의심 그리고 믿음
딸램: 엄마, 엄마 아들 재수하게 해주면 안 될까?
엄마: 안돼.
딸램: 왜 안돼?
엄마: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가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야지.
딸램: 올해 열심히 해서 내년에 가면 되잖아.
엄마: 엄마는 할 만큼 했어. 나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도 아쉽지 않고, 이제는 수험생 엄마를 더 할 생각이 없어.
딸램: 엄마가 아니라 엄마 아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까 하는 말이지.
엄마: 성실함에는 댓가가 없을 때도 있지만, 불성실에는 반드시 댓가를 치르는 거야. 그 댓가는 네 동생이 치러야지. 내가 치를 이유는 없어.
딸램: 참 모질게 말하시네.
엄마: 지나치게 헌신적이라는 말을 주변에서 하도 많이 해서, 네 공격에는 전혀 자극이 안 돼.
딸램: 한 번만 다시 생각해봐.
엄마: 왜 그러는 건데?
딸램: 아니 좀…, 엄마는 좀 그렇지 않아?
엄마: 뭐가 좀 그런데?
딸램: 아무래도 학교가….
엄마: 누구를 위해서 재수하라는 건지, 난 네가 좀 의심스러운데?
딸램: 헉- 엄마는 뭘 또 그렇게….
엄마: 네 동생은 실무 스타일이지, 엉덩이 붙이고 책을 파는 스타일이 아니야. 대학 가면 훨씬 잘 할 거야. 대학 가서 성실하게 하고 원하는 대학에 편입하면 되지.
딸램: 엄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엄마: 문제는 말이야. 네 동생을 위해서 B플랜, C플랜까지 세워둬야 한다는 거야. 너무 피곤해.
딸램: 그건 확실히 엄마 아들을 위한 거 맞아?
엄마: 헐~ 너 지금 날 의심하는 거냐?
딸램: 의심을 받아보니까… 그게 은근 전염성이 있네.
엄마: 입학식 때 너희 동기들 출신학교랑 스펙 보니까 완전 빵빵하더라.
딸램: 한국 사람들이 여기 사정을 몰라서 그렇지. 나 힘든 일 해냈다니까!
엄마: 난 좀 쫄리더라.
딸램: 왜?
엄마: 하버드, 스탠포드에 회계사, 변호사 스펙을 가지고도 의사마저 해보겠다는 동기들 사이에서 우리 딸이 힘들지 않을까? 혹시 경쟁에서 뒤처지면 어쩌지?
딸램: 별 걱정을 다 하네. 그런 애들과 경쟁해서 입학한 거라니까!
엄마: 넌 뭐가 이렇게 자신만만하냐?
딸램: 의전원은 미국에서도 가장 우수한 아이들을 뽑는 곳이야. 외국인으로서 핸디캡을 가지고도 의전원 입학에 성공했다면 나한테 어딘가 그런 아이들 이상의 탁월함이 있었다는 걸로 판단해야지.
엄마: 헐, 너무 자기중심적인 해석 아니야?
딸램: 내가 쫄려 하면 학업에 유리해?
엄마: 그건 아니지만….
딸램: 자신감, 용기, 도전, 이게 내 성공의 3원칙인 걸 아직 몰라?
엄마: 성공의 원칙에 노력과 성실함 정도는 좀 추가하자.
딸램: 솔직히 말해서 학교에 가서 동기들을 만나보니까, 아무래도 눈치가 벼락치기로는 어려울 것 같아. 그동안 했던 것처럼 머리를 믿었던 잔꾀는 버리고, 이젠 강제로라도 성실해야 할 분위기더라.
엄마: 벼락치기 대장이 큰일났네.
딸램: 벼락치기가 불가능하니 앞으로는 꾸준히 하겠지.
엄마: 설마….
딸램: 엄마, 쫄지마. 기어코 의전원에 입학했는데, 아직도 증명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