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가만히 누워만 있고, 사료도 안 먹고, 참치캔도 안 먹고 조금 이상해 보였다. 놀아주려 열심히 낚싯대를 흔들어도 잘 놀지도 않고, 작은 아이 방 한 구석에서 나오질 않는다. 그러더니 먹은 것도 없는데 이틀을 연속으로 토하는 것이 아닌가. 고양이는 원래 헤어 볼도 토하고 잘 토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콩이는 자주 토하는 애가 아니었고, 평상시 토할 때는 사료나 간식을 급히 먹고 나서 그랬었는지 사료를 한 무더기 같이 토해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노란 물을 토했다. 사람이 먹은 게 없는 데 토할 때처럼 말이다. 콩이를 키운 뒤로 열심히 들여다본 고양이 관련 글에서 본, '고양이가 아프다는 신호'의 정석을 보이고 있었다.
생애 처음 진정제 맞아본 고양이
콩이가 우리 집에 온 지 1년 하고도 9개월인데, 그동안 중성화 수술할 때와 접종 때 빼고, 아파서는 병원을 간 본 적이 없었다. 콩이는 아기가 아닌 7개월령일 때 우리 가족이 되어서인지, 처음 접종할 때도 병원에서 "예민하네요." 소리를 듣던 고양이였다. 그래도 어떻게 알아서 주사는 잘 놔주셨었는데...
진료를 하려면 만지고 살펴봐야 하는데, 콩이가 이동장 끝으로 몰려서 으르렁 하악거리니, 이렇게 예민하면 볼 수가 없단다. 진정제 주사를 놓고 기다려서 보자고 해서 한참을 기다려, 축 늘어진 콩이를 데리고 가더니, 피검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빈혈은 아니고, 사진을 찍어보니 위염 소견이 보인다고 한다. 일단 식욕촉진 주사를 놨다고 얘기하면서 하루 정도 지켜보자고 했다. 약을 먹여본 경험이 없음을 얘기하니, 설탕물에 가루약을 섞어서 송곳니 사이로, 주사기로 주면 된다고 했다. 차로 오면서는 조용했는데 집에 오니 진정제가 풀리는 중인지 몇 번이나 하악을 해서 건들지를 않았다.
피 뽑느라 털을 미는가 보다. 집에 와보니 이렇게 생겼다.
생애 처음 약을 먹어 본 고양이
콩이에게 약 먹이는 걸 시도해야 했다. 하루 치만 준다고 했고, 약을 못 먹이고 계속 토하고 상태가 안 좋으면 병원에 와서 주사를 또 맞아야 한단다. 집에서는 침을 흘리고 다녀서 병원에서 주사 맞는 게 편할 거라고. 사악한 병원비를 직접 경험해보고 나니, 다시 진정제 주사를 놓는 진료는 피하고 싶어 어떻게든 약을 먹여야 했다.
미지근한 설탕물에 가루약을 섞고 받아온 주사기에 조금 채우고는, 양치할 때처럼 콩이를 붙잡아 송곳니 사이로 조금씩 흘러주었다. 화들짝 놀라면서 뛰쳐나가길 몇 번, 다시 붙잡아 먹이길 몇 번, 하면서 어느 정도 약을 먹일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얘기가 무엇인지 그때 깨달았다. 온 집안을 뛰어 돌아다니면서 입에서 침을 흘리는데, 구조상 약을 꿀꺽 삼킬 수가 없는 것인지, 계속 틱! 틱! 소리를 내면서 혀로 입을 닦아내면서 턱에는 침을 매달고 다녔다. 하얀 침이 약을 뱉어 도로 나온 것인지, 삼켜지지 않아 흘리고 다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삼켜서 위로 내려간 것은 있을까? 수건을 들고 같이 돌아다니면서 바닥에, 이불에, 서랍장에, 캣타워에 흘린 침을 닦아냈다. 10분은 더 걸렸으려나 어느 정도 진정이 되니 더 이상 침을 흘리지 않는 거 같아 물 적신 수건으로 턱과 입 주면을 닦아주었다. 콩이도 나도 처음 경험한 것에 실소만 나왔다.
주사도 맞고 약도 먹은 효과가 있어서인지 저녁부터는 사료도 먹고 츄르도 받아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콩이가 아기가 된 것처럼 와서 비비고 울고 하는 것이었다. 콩이는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 때 우리 집에 온 아이라서 그런지 처음부터 독립적이었다. 무릎에 앉는 건 생각도 못하고 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애인데, 웬일인지 옆에 와서 비비고 물어보면 말대답도 꼬박꼬박 하고, 훨씬 더 친절해진 느낌이었다. 아프다고 어리광 부리는 건가? 애교냥으로의 변화가 반갑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다음날 오전에도 약을 줘 봤다. 어제 물을 많이 타서 오래도록 먹인 경험이 있기에 이번엔 짧게 먹이고자 설탕물의 양을 적게 조절해봤다. 그랬더니, 화들짝 놀라는 정도가 3배는 컸던 거 같다. 다시 뛰어다니면서 침을 흘리고 다니는데, 약이 적었기에 이번엔 짧게 끝냈다. 오전중에 약을 먹이고 오후가 되니 이제 슬슬 돌아다니기 시작하더니,빨래하러 세탁실에 가면 따라와 참견하고, 빨래 널러 베란다에 가면 또 따라와서 참견하고. 예전의 어슬렁어슬렁 거리던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비비고 말대답하는 것도 , 확실히 좋아진 다음날부터는 줄었다. 완벽한 복귀다. 예전처럼 독립적인 콩이로 말이다.
토하지 않고 잘 먹고 잘 노니 참 다행인데, 병원에서 식욕촉진제를 주사한 후유증인지, 평소에는 아침에 준 사료를 하루 종일 먹었었는데, 사료를 주면 바로 다 먹어버린다. 습식 캔을 저녁에 주면 평소에는 한꺼번에 먹지 않고 새벽까지 나눠먹었었는데, 바로 바닥을 싹싹 핥아먹는다. 식욕이 엄청 늘었다. 간식 달라고 졸졸졸 쫓아다니고. 예전처럼 한꺼번에 주지 말아야 하나 걱정이 생겼다.
그러더니 어제부터는 사료를 또 잘 안 먹는다. 이제 제대로 돌아왔다. 튕기는 콩이로 말이다.
컨디션이 좋아지니 냉장고에 바로 올라갔다. 아프면 높은 곳도 안 올라가나 보다.
셋째 아들 콩이
아이들이 어릴 때,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작은 생물들을 참 많이도 가지고 왔었다. 달팽이도 유기농 상추를 먹이며 1년 넘게 키워 봤고, 구피는 새끼를 낳는 모습까지 볼 정도로 키워봤고, 가재도 2년 정도 사셨고, 장수풍뎅이, 미꾸라지, 누에고치 등 여러 동식물들이 우리 가족을 거쳐갔지만, 콩이처럼 직접 만지고 눈을 마주칠 수 있는 동물은 처음이다. 그래서 특별한가 보다. 따스함을 느끼고 눈동자를 본다는 게 아이들에게도 특별하지만, 아기를 키워본 엄마인 나는 콩이를 통해 아이들 어렸을 때를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말도 못 하는 애랑 하루 종일 나 혼자 말하면서 지냈었는데.. 히히.이제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 간혹 서운할 때도 있는데, 콩이는 여전히 나를 찾는다. 내 부엌일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계속 나만 쳐다보는 콩이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난다.
"엄마가 놀아줄까? 콩아"
아기한테 하듯이 할 수밖에 없다. '셋째 아들이냐'고 남편은 맨날 뭐라 한다. 고양이를 사람 취급한다고. 훗훗
부엌 일하는 나만 쳐다보는 콩이 : 어떻게 말을 안 걸 수 있겠는가?
고양이한테 약을 다 먹여보고.고양이를 키우지 않았을 때의 나보다, 키울 때의 내가 더 좋은 사람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콩이한테 신경이 가느라 아이들한테 잔소리가 덜 하고, 밖에 보이는 다른 생명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콩이로 인해 더 많은 책과 기사를 읽게 되고, 이미 나이가 50이지만 훨씬 성숙해졌다고 할까? 넓어지고 더 길어진 느낌이다. 나의 원이.
앞으로도 우리 집 마스코트 콩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우리와 오래 함께 하길 바란다. 아이들도 독립한 후에 엄마 아빠는 안 궁금해도 콩이 안부를 물으러 집에 전화를 하지 않을까?
"콩아. 뭐해?"
** 덧붙이는 말 **
찾아보니 고양이에게 알약을 먹이는 도구도 있고, 알약을 먹이는 편이 더 수월해 보였다. 다음에 혹 다시 약이 필요하다면 알약으로 달라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