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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맥스 Feb 15. 2022

갑상선 세침검사가 불러온 회상

죽음을 마주하는 연습

죽음을 마주하는 연습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

저에게 선종하는 은혜를 주시어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영원한 천상 행복을 생각하고 주님을 그리워하며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위의 기도는 가톨릭 교회에서 하는 '선종기도'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끌려 성당을 다녔다. 아기 때 유아세례를 받고 초등학생 때 첫 영성체를 하는 조기 교육 코스를 밟았지만, 가톨릭 교리나 성경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날라리 신자다(조기 교육의 폐해라고나 할까?).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말이지만, ‘선종’이라 하면 교황님이나 추기경님 같이 명망 있으신 분들이 돌아가셨을 때나 쓰이는 말인 줄 알았다. 


'선종'은 가톨릭에서 죽음을 뜻하는 용어로, 임종 때에 병자 성사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을 말하는데, 평신도에게도 쓰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신자가 돌아가시면 부고가 뜨는데, 그때에 '선종'하셨다는 말을 쓴다.




5년 전, 시어머니께서 방광암으로 수술을 받으시고 항암주사를 석 달 동안 맞으실 때, 우리 집에 같이 지내실 때 얘기다. 

어머니 당신이 가장 힘드신 시간이었을 것이다. 옆에서 나도 시누도 남편도 고생을 했지만,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진 않으시니, 그 속 타들어감을 짐작만 할 뿐이었다.

지인과 전화 통화를 하실 때마다 하시는 단골 멘트,  “죽어야지.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는 매번 같은 레퍼토리였다. 자식들에게까지 우는 소리는 못 하시겠으니, 친구분들과의 통화 중에 진심이 나오는 것 일게다.  하지만, 거실과 부엌이 붙어있는 좁은 집에서 나는, 그 소리를 피할 수 없었고, 매번 왜 그런 소리를 하시는지 싫었었다.


왜 내가 이 병에 걸려야 하는지, 왜 나인지, 내가 뭘 잘 못했는지...

     

나는 연세가 70이 넘으시면, 병 앞에 초연하실 줄 알았다. 삼 남매 훌륭하게 키우셨고(장남은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있는 직업이시고), 모두들 출가해서 자식 낳고 잘 살고 있고, 시아버지께서 당뇨와 고혈압 약은 드시지만, 어디 입원할 정도의 큰 병은 아직 없으셔서 다행히 두 분이 잘 지내고 계시고, 시어머니 당신은 혈압약도 안 드시는 건강체질이시고, 아버님이 집안에서 막내인 덕에, 어머니는 시집살이도 안 해보시고, 정말 남부럽지 않은 평탄한 인생을 살아오셨는데 뭐가 그렇게 억울하실까? 듣는 내가 답답했었다.


몇 개월 후 친정어머니가 같은 방광암 진단을 받으셨다. 시어머니는 항암까지 하시고도 방광을 제거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소견으로, 본인의 소장으로 방광을 대신하는 인공방광 수술을 받으셨다. 진단부터 항암치료와 다시 수술까지 거의 10개월 여를 고생하셨었다.  친정엄마는 다행히도 초기 수준이라서 암 조직을 긁어내는 수술만 하시고 치료로 결핵 주사를 3개월 정도 맞으셨다. 시어머니에 비하면 고생하신 기간도 짧고 방광도 유지되고 훨씬 좋은 여건이었지만, 옆에서 본 친정 엄마는 시어머니와 똑같았다.     

지인들 전화를 받으시면 “왜 나인지 억울하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 등등 시어머니와 다를 바 없는 레퍼토리였다. 친정엄마는 천주교 신자시다. 반면에 시어머니는 무교시다. 엄마는 다를 줄 알았다.  죽음이란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시어머니보다는 의연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똑같았다. 병을 마주한 그 시간에 종교는 무의미해진다.  


죽음을 앞둔 분들이 느끼는 감정의 5단계가 있다고 한다.  

시한부 환자들을 대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심리를 연구한 '엘리자베스 쿼블러 로스' 박사는 저서 'On Death and Dying(죽음과 죽어감)'에서 환자가 죽음을 인정하기까지 겪게 되는 다섯 가지 단계를 얘기한다. 


    1단계 : 부정(Denial)

               제일 먼저 자신의 상황을 부정한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아니야. 검사가 잘못되었을 거야'


    2단계 : 분노(Anger)

               분노와 불평을 토로한다. 

               '왜 하필 나야' '왜 하필 지금이야' 


    3단계 : 협상(Bargaining)

             죽음을 인정하면서도 연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타협을 하려 한다. 

             '아이가 결혼할 때까지만 살게 해 주세요'


    4단계 : 우울(Depression)

             회복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모든 것을 포기한다.  

             침울해지고, 울기도 하고, 불면증이 생기기도, 또 깊은 잠에 빠지기도 한다. 


    5단계 : 수용(Acceptance)

              체념하고 받아들인다. 정리의 시간을 가지며 초연해진다. 

              '나는 지쳤어'


요양보호사 교육이나 호스피스 교육을 받는 분들은 익숙한 내용일 것이다. 우연히  기사로 접한 뒤에 블로그를 뒤져 알게 된 내용이지만, 두 어머니의 일을 겪어본 나는 누구보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두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었단 표현이 맞지 않는, 치료가 가능한 암 환자였던지라, 로스 박사의 5단계를 적용하는 게 적절치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암 진단을 받고 치료에 1년 여 시간을 보낸 환자를 지켜본 가족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모든 환자가  감정의 단계가 다 같을 수도 없고, 정도의 차이도 있을 수 있고,  순서의 차이도 있을 테지만, 로스 박사가 객관적인 용어로 정리를 해 놓은 걸 보니,  딱 '내 말이 그 말이야' 하고 싶을 만큼,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들이 선명해졌다.


우리 집에 계셨던 석 달간의 시간으로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의 감정을 다 읽을 순 없겠지만, 내 눈에 가장 크게 보였던 건 '분노'와 '우울'이었다. 다른 감정은 내가 눈치챌 수 없지 않았을까 싶다. 자식 앞이라 맘껏 울지도 않으시고, 크게 분노하지도 않으셨지만, 지인들과의 통화에서만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드러내셨다. 처음엔 '분노'가 깊었고, 일주일에 한 번, 주사를 맞는 횟수가 더할수록,  구토도 심해지고, 기운도 떨어지고, '우울'이 깊어 보였다. 당시에는 식사를 챙기고 병원을 모시고 가는 걸로 나의 소임을 다한다고만 생각했었기에,  그 복잡한 감정들을 같이 얘기해보고 진심으로 위로해드리지 못한 거 같아, 지금  돌이켜보니 참 송구스럽다. 그때는 보호자로서 나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어쩌면 다시 그 상황이 되어도,  시어머니와 그런 감정을 얘기하라 하면 마음은 있어도 쑥스러워 못할 거 같다.  


'선종기도'를 알게 되다


그 당시 나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외출이었는데,  장 보러 나와서 걷거나, 일주일에 한 번 도예 수업을 가거나, 일주일에 한 번 성당 구역 모임을 다녔었다. 보통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나와 비슷한 연령 대의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데, 성당 모임은 30대부터 70대까지 모인다. 신앙과 교회에 관한 이야기가 주가 되지만, 며느리이기도 시어머니이기도 한 신자들은 본인의 가정사까지 공유하게 된다. 나 역시 답답한 마음을 얘기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오곤 했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분노'와 '우울'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덧붙여 나는 병 앞에, 죽음 앞에 그렇게  나약해지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던 거 같다. 


 그때, 한 나이 많은 자매님께서 위에서 언급한 '선종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죽음이 가깝지 않아도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라고. 역시 날라리 신자였던 나는 몰랐다. 제목만 보고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로만 알고 있었다. 죽음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나를 단단하게 해 달라는 기도라니..

그 후 나의 기도에서 '선종 기도'는 빠지지 않았다. 지치고 힘들 때만 하게 되는 기도일지라도 마지막에는 선종 기도를 바치며 부모님의 죽음과 나의 죽음 모두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했다. 어머니들과 나는 다르다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위험한 발상이었다. 나이 어린 자의 미숙한 자기만족이었다.


내가 갑상선 세침검사를 하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건강 검진을 하면 갑상선에 결절과 낭종이 여러 개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고, 꼭 추가적인 세침검사가 필요하단 말을 들었다.  몇 년을 미루다 올해 초 검사 일정을 잡고 갑상선암센터 교수를 만났다.  사진을 보며 교수는 "크기가 크지는 않지만, 모양이 좋지 않고 울퉁불퉁하며, 색깔이 반짝반짝하다. 이러한 경우 안 좋은 케이스가 많다"며 두 개를 세침 검사해보자 했고, 2주 후에 결과를 보러 가기로 했다.  


그 힘든 5년의 시간을 버티고 시어머니는 요즘 별 다른 재발 없이 잘 지내신다. 친정어머니도 방광암은 완치 판정을 받으셨고, 불행히도 다른 암이 생겼지만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잘 마치시고, 다행히 잘 회복 중이시다. 두 어머니의 투병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의료 기술이 정말 훌륭하다 느꼈고, 생명은 그렇게 쉽게 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드라마에서 갈등을 마감하는 건 언제나 ‘암’이 아니었었나? 현실 세계에서 암은 대체로 잘 컨트롤이 되어 보였다.  더군다나 갑상선암은 보험회사에서 진단비도 얼마 안 줄만큼 잘 낫는 암이 아니었나? 결과를 기다리는 2주일 동안 걱정하는 마음이 안 드는 건 아니었지만,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걱정이 앞 선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가족들이 걱정되었다. 나의 아이들, 나의 남편. 내가 수술받고 치료받는 동안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게 뻔한 살림들. '나만 생각해야지'하면서도  나에 대한 걱정보다 이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이 더 신경 쓰였다.  엄마라서 그런 것일까?  여자라서 그런 것일까?  결정되지도 않은 일에 불안감이 쌓여갔다.


다행히도 결과는 좋게 나왔다. 염려하던 바가 실현되지 않아서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나니, 내가 싫어하던 병 앞의 '분노'와 '우울', 두 어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생에 회한이 왜 없겠는가? 그동안 당신들이 살아온 날들이 쭉 지나갔으리라. 원망도 있고 아쉬움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의 어머니들의 '분노'와 '우울'에는 당신 자식들을 고생시킨다는 미안함과 남아있는 남편에 대한 염려가 묻어 나온 것이라는 것을 이제 안다. 좀 더 나이가 들어 정말 큰 병을 마주하게 되면, 나 역시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걸 확실하게 느꼈다. 한 술 더 떠, 로스 박사의 5단계 감정을, 단계별로 팍팍, 아주 확실하게,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드러내 놓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 어때서? 안 죽겠다는 것도 아니고 죽기 전에 말 좀 하고 죽겠다는데 뭐?




이제 나의 '선종 기도'는 다르다. 죽음 앞에 의연하고자 '선종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 나와 부모님들의 행복한 '선종'을 위한 기도이다. 앞으로의 인생을 충분히 더 즐기고, 아름다운 추억을 가득 안고 떠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살아있는 지금의 우리를 위한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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