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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건너 Jan 27. 2024

           좋은 놈

   텃밭의 겨울밤은 더 깜깜하다. 플래시를 들고 밭을 한 바퀴 둘러보고 농막으로 들어온 남편이 농막 한 편에 붙어있는 쪽방 문을 살며시 열곤 선 채로 묻는다. 집에서 만두 안 가져왔냐고. 나는 보던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고개만 가로저었다. 그가 가만가만 문을 닫는다. 만두를 안주로 소주 생각이 나는 모양인데 나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그의 배려가 느껴진다.           



83년도 겨울, 남편의 청혼을 받아들이자 그가 말했다. “나 좋은 놈이야.” 앞으로 결혼해 살면서 자기에 대해 불만이 생기거든 담아두지 말고 얘기하라고 했다. 헤어지지 않고 살 거니까. 추운 날 믿음 같은 것이 겨울이불처럼 나를 덮었다.


결혼을 하고 살게 되니 그의 허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술 마시면 왜 그리 목소리는 크고 말이 많아지는지. 이 불만을 얘기하긴 쉽지 않았다. 나는 입을 닫고 이상한 남자와 결혼했다는 생각에 집착했다. 문득문득 그를

떠나는 상상을 면서.


결혼생활이 길어지며 불만은 자꾸 생겨나고 크기는 더해갔다. 집에 오면 말을 한마디 하나, 뭘 물으면 대답을 하나, 어쩌다 날아오는 말은 야구공을 면전에 던지는 듯해서 맞는 나는 아파 죽겠고, 자존심은 또 왜 저리 강한지. 이 모든 것이 수선도 불가능한 그의 고질이었다. 왜 저러나, 너를 연구하느라 내 인생 삭고 있다고 생각하며 혼자 한숨 쉬었다.      

   


결국 터졌다. 결혼 23년 만이었다.

출근 채비를 하고 있는 그에게 주말에 언니네 같이 가서 짐 좀 가져오자고 하자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기 갈 새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기 전부터 그에게서 나올 답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한 부탁이었다. 그날은 갈 새가 없으니 좀 더 있어보자고 부드럽게 말하면 오죽 좋을까. 어째 말을 저렇게 밖에 못하는지.

   더는 참을 수 없는 나의 마음이 현관문을 열어주며 나가라고 등을 밀었다. 마음의 명령을 따라 몸이 움직였다. 밖으로 나가도록.      


이 이른 아침에 어딜 가겠는가. 동네를 돌고 또 돌고 옆 동산을 올라가 한 바퀴 돌고 벤치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출근하고 없었다. 방에 들어가 눕던 몸이 벌떡 일어났고 손가락이 휴대폰을 열어 문자를 날렸다. ‘말 한 번을  따뜻하게 한 적이 있는지, 행동 한 번을 자상하게 해 준 적이 있는지. 이것도 폭력이야. 손으로 때려야만 폭력이 아니라구!’

바로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소리냐고.

대성통곡과 함께 내 혀가 마구 움직이며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혼 후 지금까지 말 한마디 부드럽게 한 적 있어? 뭘 물으면 대답을 자상하게 한 적이 있어? 내가 당신한테 전화(안 하는 이유가 뭔 줄 알아? 전화를 하면 뭘 해, 듣는 답은 뚝배기 깨지는 소릴 텐데 그럴 걸 뻔히 알고 전화하는 바보가 어디 있냐!).. 이렇게 계속하려는 말을 그가 막으며 말했다. “00야 00야 내 말 좀, 글쎄 내 말 좀 들어봐. 그랬다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우리 이제 잘 살자..” 그의 끝 음절이 급히 젖었다.

   전화를 끊고 잠깐 망설이다가 나는 문자 하나를 더 날렸다. 그런 당신 등 뒤에서 눈물 자주 흘린 자식들이니 이제라도 아이들 많이 보듬어주라고.

   

격일제 근무로 다음 날 아침에 퇴근해 온 그의 얼굴이 핼쑥했다.           




나에게서 보다 그에게서 더 크게 터진 건 다음 해였다.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간다고 입을 양복을 한참 고르던 그가 곤 색으로 꺼내 입고 나가는데 잘 다녀오라는 말에 대답이 없다.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등 뒤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늦은 밤에 들어온 그의 손에 차에 있던 성능 좋은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그걸 나에게 건네주고 거실 벽 앞에 서더니 자기 상반신을 찍으라고 했다. 멋있게.

   뭔가 이상한 분위기에서 나는 카메라를 받아 들고 그에게 똑바로 좀 서보라며 카메라 화면에 그의 얼굴을 가득 담아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를 다시 받아 든 그가 말했다. 지금부터 자기가 찍는 사진 없애지 말라고. 그리고 방으로 향했다. 침대 없는 두 개의 작은방에 아침부터, 아니 늘 접어두지 않고 굴러다니는 이불들을 지금 정갈히 접어놓기엔 너무 늦었다. 사태의 심각함을 감지한 나는 카메라를 들고 첫 번째로 향하는 방으로 그를 급히 스치며 들어가 이불을 걷어 올리려고 허리를 구부렸고  그가 그대로 두라고 말했다. 단호하게.      

   

두 개의 방바닥 촬영을  끝내고 거실에 앉은 그가 그의 가슴을 치며 울었다. 내가 이 꼴을 보며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나 죽으면 지금 당신이 찍은 내 얼굴 사진 빼서 영정사진으로 쓰라고. 그리고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런 속 얘기 처음 한다며. 바닥은 언제 닦았는지 걸레는 늘 말라있고 옷 위에 먼지는 쌓여있고 방방이 이불은 둘둘 말려있고, 입지 않는 옷은 버리자고 몇 번을 얘기했냐고. 당신이 내 마음에 이렇게 무심한데 우리가 부부 맞느냐고. 느닷없는 상황에 나는 정신이 없었다. 남은 불만을 더 쏟아낸 그가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그동안 넣기 위해 열었던 옷장과 서랍을 버리기 위해 열었다. 아까워서, 살 빼면 입어야지, 버릴까 말까, 나름 보관의 이유를 달고 자는 옷들을 깨워 꺼내놓기 시작했다. 방바닥에 옷들로 쌓여갔다. 넓게 높이 더 높이.


새벽이 되어 그가 방으로 들어왔다. 지난밤 가득 차 있던 울화가 그대로 담긴 목소리로 이거 다 버릴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빠른 몸짓으로 옷들을 큰 봉지에 담아 들고나가며 말했다. 입는 옷이건 안 입는 옷이건 싹 다 쓸어다 버리려 했다고. 그는 저층 아파트 꼭대기인 우리 집 오 층과 옷 수거함이 있는 일층을 걸어서 여러 번 오르내렸다. 누가 벌을 서고 있으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방 한쪽 구석에서 기죽은 차렷 자세로 계속 서 있었다. 다 버리고 올라온 그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서있는 말없이 나를 안았다.     


아침에 그가 출근한 후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들을 하나하나 내려 버릴 건 더 버리고 입을 건 먼지를 털  보자기로 싸서 다시 걸었다.


그날의 사건을 계기로, 아프지만 나를 정면으로 바라봐야 했다. 저녁이면 다시 내려 펼 이불을 뭐 하러 아침에 접어 올리나 허리만 아프지, 옷 정리만 하려면 왜 이렇게 졸리는지.. 등의 사고와 이 지면에 기록 못할 다른 습관들도.

    

신혼 때 그가 방에서 나를 향해 혼잣말처럼 하는 소리를 부엌에서 연탄을 갈며 들은 적이 있다. “맘에 안 드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그가 내 이마에 입술을 대고 나서야 부엌 쪽문을 열고 출근하던 달콤한 행동을 거둔 시기도 바로 그 이후가 아니었을까. 언제였더라, 그가 스치듯 한 말도 기억이 났다. 뭘 하는 일이 짱짱하질 못하고 대충대충이라고. 형부가 했던 말도 달려와 나를 쳤다. 서서방이 처제랑 살면서 답답할 때 많을 거라던. 언젠가 작은 언니가 했던 말도 나를 잡고 늘어졌다. 너도 사차원이라던.        

   

카메라를 들이대고 터트린 그의 불만은 신혼 때부터 쌓여온 것이리라. 그가 오랫동안 고수해 온 침묵은 나를 향한 시위가 아니었을까. 내가 그의 치부라고 들추며 몰래 가슴을 칠 때 그는 나의 치부를 수시로 들추며 분노했으리라. 표출되지 못하고 마음에 담겨 있는 것이 더 진심이니까.

   나의 답답한 대충대충도, 집에서 지내며 게을리하던 청소와 정리도, 그가 보기엔 수선 불가능한 장애 급 고질이었을 것이다.

   우린 서로 제일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는 망상으로 오랫동안 인내해 온 동지이기도 하다.


나는 해오던 생활을 펼쳐놓고 수선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의 양 꼭지에 맞은편 꼭지를 맞춰 접어 개서 내 키보다 높은 이불장 선반에 발 뒤꿈치를 들어 넣었다. 깊은 낮잠을 우선하던 생활에서 낮잠을 줄이고 집안 정리를 우선했고 옷은 판단을 빨리 해서 바로 버렸다.          




시간의 강물은 한참 흘렀고 흐르고 있다.

크고 작은 안팎의 사건들이 그와 나를 하나로 단단히 묶게 했던 곡절들에 연민의 이불을 서로 덮어주기도 하면서, 젊은 날 이를 악물로 벼르던 단점들에 둔감해지기도 하면서.

   관성의 힘은 강한 것이어서 그도 나도 애초에 서로에게 원했던 기준에까지 달라져있진 않다. 전진과 후퇴를 반복할 뿐이다. 그 기준이란 것이 다 옳다고도 볼 수 없고.

   

나이 듦엔 또 얼마나 편안한 힘이  존재하는가. 내 청소의 한계는 여기까지요.. 배짱의 말없음표에 그의 침묵이 부드럽다. 그는 가만가만 청소를 한다.


 나와 헤어지지 않고 살 거라던  결혼 전 그날의 다짐 지켜내느라 그가 고생많았다.

           



사랑이 표현되지 않으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이젠 고백을 해야겠다. 보던 책을 내려놓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어디서 꺼냈는지 그는 말린 망둥어를 난로에 구워 농막 탁자에 놓고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다. 나는 그의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그가 마시려고 따라놓은 소주잔을 들어 내 정량인 한 모금을 삼켰다. 그리고 말했다. 사십 년 전 건대입구 역 근처 맥주 집에서 당신이 ‘나 좋은 놈이야’ 했을 때 가졌던 신의(信義), 멀어진 적 없다고, 당신 좋은 사람이라고.

   술맛 당기는 김에 조금 더 마신들 어떠하리. 그의 잔을 다시 당겨 들어 한 모금 또 마셨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했다. "당신 나 두고 먼저 세상 뜨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어, 나한텐 당신이 전부니까!"       


겨울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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