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덕담

by 개울건너

몇 년 전에 담근 김치의 간이 너무 짜서 희석시키다 보니 숙주나물 판두부 다짐육 등 부재료가 자꾸 들어가 만두소의 양이 많아졌다.

아침 일찍부터 만두를 빚었다. 남편이 만들고 내가 쪄냈다.

점심식사 후 우린 한숨 자고 또 빚고 또 쪄냈다. 저녁 먹고 또 빚었다.

다음날은 전을 부쳤다. 고구마 전, 연근 전, 동태 전을.

내가 재료를 손질하고 남편이 부쳤다.

저녁에 인천에서 직장생활 중인 서준(작은 아들)이가 왔다. 저녁식사 후 서준이가 말했다. “설거지는 그냥 둬 내가 할게.” 그가 그릇 올려놓는 선반 구석구석을 칫솔로 닦고 설거지를 하고 주방 청소를 했다.



설날 아침이다.

불 위에 갈비를 먼저 올렸다.

떡국떡을 한 번 씻어 찬물에 담갔다.


잡채를 버무리는데 남편이 양말을 신으며 물었다. “나 필요 없지?”

나는 잡채 버무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응?”

“내가 지금 더 할 일 없냐구, 한 바퀴 돌고 오게, 어제도 운동을 못해서.”

“깜짝이야, 나 필요 없냐고 해서 무슨 소린가 했네. 당신이 필요 없으면 세상 남자 다 필요 없지!”

그가 운동을 나갔다.

어머 참, 세뱃돈 봉투에 쓸 덕담을 안 썼네.

일회용 장갑을 벗고 손을 씻었다. 마른 수건으로 손을 닦고 봉투가 놓여있는 낮은 탁자로 가서 무릎을 쪼그리고 머리를 숙여 봉투에 덕담을 썼다.

‘민준, 한 해 고생 많았다. 건강하면 만사형통이니 건강 잘 살피는 해 되렴. 새해 힘차게 출발하자.’

서준이 봉투에도 같은 내용으로 썼다. 예빈 봉투엔 같은 내용에 ‘다치지 말고’를 덧붙였다.


남편이 베란다에서 상을 가져다 거실에 폈다.

늦잠에서 일어난 서준이가 씻고 수저를 놓았다.

김치는 새 통에서 깊숙이 있는 것으로 꺼내서 썰어 놓았다.

민준(큰아들) 내외가 도착했다.

예빈(며느리)인 아직 한쪽 팔의 깁스를 풀지 못하고 있다. 시아버지의 커피를 떨어지지 않게 챙기는 그녀의 자유로운 한 손엔 사각의 커피 상자가 들려있다. 현관문을 열어둔 채 민준이 선물상자를 들여놓았다.

예빈이 커피를 식탁 위에 놓고 나서 선물상자 맨 위에 놓인 하트 모양 투명 용기에 든 초콜릿 두 통을 들어 남편에게 주며 말했다. “아버님, 밸런타인데이 선물이에요 어머님이랑 하나씩 드세요 헤헷”

눈이 오거나 강추위가 닥치면 초보운전인 예빈의 출퇴근길을 걱정하는 남편이 예빈 팔 통증은 어떤지부터 물었다. 그녀는 많이 나아졌다고 대답했다.

민준이가 예빈 부모님이 보내셨다는 보리굴비도 내놓았다. 젓갈과 황금향도 내놓았다.

거실이 선물로 풍성해졌다. 남편이 “선물을 가득 싣고 왔구나” 말했다.

민준이 주방으로 들어오며 예빈이 떡국엔 떡은 조금만 넣어달란다.

내가 “오오 그래 알고 있지. 예빈 떡은 다섯 개지.” 민준이가 웃었고 나도 웃었다.

나는 만두를 두 개씩 그릇 아래 깔고 그 위에 국자로 떡국을 부어 몸을 돌려 식탁에 놓았다. 예빈이 그릇엔 떡은 다섯 개만 넣었다.

식탁에 놓인 흰색 노란색의 지단, 양지 익혀 찢어 무친 것을 보곤 예빈이가 “와 고명이네” 하며 젓가락으로 떡국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떡국이 금세 색동옷을 입었다. 김은 마지막에 가위로 썰어 얹었다. 민준과 서준이 떡국 그릇을 거실 상으로 옮겼다. 만두는 더 쪄서 큰 접시에 가득 담아 식탁에 따로 더 놓았다. 우리는 모두 만두를 좋아하는 만두가족이기도 하니까.

정성과 노력 없이 거저 되는 삶은 없으리라. 설상이 푸짐했다.


모두 식탁에 앉았다. 나는 얼른 다시 일어나 작은 곽 티슈를 가져다가 식탁 양편에 놓았다. 서준이 말했다. “엇, 돼지 이놈, 똥 싸네.”

모두 핑크색 곽 티슈의 그림에 눈을 맞추며 어 그러네 하고 웃었다.

어른 자리에 앉은 남편이 성호를 긋고 머리 숙여 식사 전 기도를 혼자 맘으로 하고, 그의 맞은편에 앉은 나는 남편의 기도가 끝날 때쯤 성호를 그으며 “주님 땡큐.”했다. 민준이와 서준이 웃었다. 서준이도 성호를 그었다. 개신교 신자인 예빈이는 가만히 있다가 수저를 들었다. 민준이도 예빈 옆에서 가만히 있다가 수저를 들었다.

예빈이가 김치가 시원하다고 말했다. 올 김장은 간이 잘 맞았다고 내가 대답했다. 갈비도 좋아하지만 잡채도 좋아하는 예빈이 이번엔 잡채를 덜 먹는 것 같아 잡채 간이 안 맞나 생각했다.

새댁시절 시어머니 댁에 내려가 식사할 때 조금 멀리 있는 반찬을 내가 젓가락으로 집을 때마다 어머니는 그 반찬을 내 앞으로 살며시 밀어주셨다. 눈에 보이나 안 보이나 멀리 있으나 곁에 있으나 늘 당신 며느리를 사랑으로 품고 계셨던 어머니, 그때가 지금의 내 나이였던 어머니는 이미 허리가 90도로 굽어있었다. 하얀 명주실 같던 내 어머니...

식사를 끝내고 민준이가 설거지를 했다. 나는 그가 씻은 그릇을 올려놓도록 이미 선반에 엎어져 물이 빠져있는 그릇을 치워 싱크대 하부장에 넣었다.

아침에 씻어 꼭지를 따둔 딸기를 냉장고에서 꺼내 식탁에 놓았고 예빈이는 커피와 차를 끓였다. 컵 닦을 때 손잡이 구석까지 살피며 빡빡 닦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성가셔 일회용 큰 컵을 꺼내 예빈에게 주었다.

친정 장조카에게서 설 인사 전화를 받았다. 며칠 후에 인사 오겠단다. 남편에게도 예빈에게도 새해 인사 전해달란다. 전화를 내려놓으며 남편과 예빈에게 그 말을 전했다. 예빈이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차를 마시며 서준이가 말했다. 현민(외사촌)형 엊그제 만났는데 집 샀다더라고, 다음 달에 이사한다더라고.

아이들끼리 잘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흐뭇한 일이 있을까. 민준 내외와도 결혼 전부터 자주 만나며 잘 지내고 있는 현민을 세 아이가 다 좋아하고 있다. 예빈이가 엇 그래? 하곤 이사하고 수리하고 석 달 후면 되겠다고 서준이도 같이 우리 현민이 형네 놀러 가자고 말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이들이 세배했다.

남편이 말했다. “새해엔 건강하고 하고자 하는 일들 다 이루기 바란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다치지 말고’에서 눈 오는 날 출근길에 미끄러져 팔이 골절돼 입 퇴원, 깁스하고 여태 고생하고 있는 예빈이 까르르 웃었다. 민준이도 서준이도 웃었다. 남편 옆에 앉은 나도 웃었다.

나는 예빈 부모님께도 올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라고 전해달라고 일렀다. 그들이 네 하고 대답했다.

나는 세 개의 세뱃돈 봉투를 남편에게 넘겨주었고 남편은 봉투에 적힌 이름을 보더니 맨 아래 있는 민준 봉투를 위에 놓고 그 아래 예빈 그 아래 서준 이름을 포갰고 위 봉투부터 민준 예빈 서준 차례로 주었다. 아이들이 몸 숙여 두 손으로 받으면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민준 내외가 가야 할 시간이다. 그들이 집 만두를 좋아해 많이 싸주었다. 예빈이가 만두 만드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이렇게 싸주셔서 잘 먹겠습니다 말했다. 예빈이가 좋아해 싸주려고 따로 사 온 딸기 한 팩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투명 뚜껑이 흔들거려 가다가 떨어져 쏟아질 것 같아 남편이 스카치 테이프로 열 십자로 묶어 붙였다.

예빈이가 음식 값도 많이 들었을 텐데 많이 넣지 못했다고 말하며 나와 남편에게 봉투를 주었다.

어제저녁에 마트에 나가 딸기와 함께 산 배 한 상자를 예빈 부모님 갖다 드리라고 말했다. “예빈아 우린 부모님께 드릴 선물이 약소하는구나.” 말하니 예빈이 아니라고, 어머님 아버님이 농사지어 귀한 농산물을 늘 주셔서 부모님이 감사하게 생각하신단다.


현관문을 열고 다 같이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민준이가 서준에게 집에 언제 갈래? 물었고 서준이는 내일 갈 거라고 대답했다. 민준이가 잘 쉬고 내일 운전 조심해서 가라고 한 손으로 서준의 등을 쓸며 일렀다. 민준에게서 장남의 무게가 느껴졌다. 장남이라는 책임감으로 머리가 무겁겠다는 안쓰러움도.

이젠 민준이가 독립된 가정을 이루고 있기에, 예빈의 남편이기에, 내 마음은 그들에게서 멀찍이 있어야 하리.

예빈이가 서준에게 현민이 형네 이사 가면 우리 같이 가자고 재차 얘기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들이 들어갔다. 예빈이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손을 내리고 몸을 숙여 인사할 땐 엘리베이터 문이 반쯤 닫히고 있었다.


서준이가 방으로 들어와 아버지 필요한 거 없냐고 물었다. 신발이 필요다고 대답하며 덧붙였다. 네가 사드린다고 하면 돈 쓴다고 부담스러워하실 텐데..

서준이 말했다. “내가 잘 말씀드릴게.”

서준이 거실 소파로 나가 남편 옆에 앉으며 말했다. 기름진 음식 계속 먹었으니까 오늘 점심은 밖에 나가서 먹자고, 열두 시에 나갈 테니 준비하시라고.



서준 차에 올랐다. 차가 주차장을 나와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서준 옆에 앉은 남편이 물었다. 점심을 어디 가서 먹을 거냐고.

서준이 일단 백화점으로 가서 아버지 신발부터 사자고 했다. 남편이 0 마트에 가면 떨이로 파는 거 있을 텐데.. 했다.

서준이 대답했다. 백화점이라고 다 명품만 있진 않으니까 백화점으로 가시자고.

주차하고 백화점 지하에서 층층이 오르 신발을 보았다. 서준이 말했다. 엄마 신발도 사줄 거니까 같이 보라고.

지상으로 올라가 편해서 내가 늘 신는 상표의 신발을 샀고 발볼이 좁은 남편 신발은 다른 매장에서 샀다.

계산하는 서준에게 다가가 엄마 것까지 사느라 지출이 많네 하니, 서준이가 보너스 넉넉히 탔으니 괜찮다고 했다.

점심은 무얼 먹을까 서준이 묻기에 냉면 먹고 싶다고 했다. 꼭대기 층 식당가로 올라가니 자리가 없다. 식당이든 이발소든 어딜 가서 기다리는 걸 못 견디는 남편이 맘 쓰여 서준이가 집에 가서 배달시키자고 했다.

집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중학생인 시누이 손녀의 문자를 받았다. ‘이모할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는 빙긋이 웃었다. 이모할머니는? 외숙모할머니지. 하긴, 애들이 어른들의 이 복잡한 촌수를 어찌 알까.

나는 바로 답을 썼다. ‘그래 플로라, 우리 플로라도 새해에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렴.’



집으로 배달된 냉면은 맛이 좋았다. 얼음이 사각이는 육수를 부으니 더 시원하다고 말하면서 먹는 중에 또 한 조카의 전화를 받았다. 물론 새해 인사였다.

서로 인사가 오간 후 전화를 끊고 말했다.

엄마 아버지가 잘 못 살진 않았나 보네, 조카들한테 이렇게 설 인사받잖아? 히히.

민준이가 무심히 젓가락으로 냉면을 집으며 대답했다.

“그렇지이, 내가 허투루 살 수 없는 이유도 엄마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기 때문이지.”

넘기려던 냉면이 목을 막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무심한 듯 말을 던져 사람 눈물 쏟게 만드는 건 꼭 지 애비 닮았다.

식사가 끝나자 남편이 새 신발을 꺼내 신고 거실을 자꾸 오갔다. 발이 편하단다. 서준이 바라보며 디자인이 심플해서 골랐는데 잘 고른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이 말했다. “잘 신을게.”


서준이도 이제 떠나야 한다. 갈비와 전, 만두를 가방에 담았다.

남편과 나도 서준이와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서준이 뒷좌석에 짐을 싣고 차를 움직였다.

내가 말했다. “가면서 졸지 마!” 서준이 대답했다. “오잉.”

남편이 말했다. “고맙다!” 서준이 대답했다. “네에 가볼게요.”



명절에 꽃잎처럼 들고 나는 덕담들을 잡아 모아보니 채반에 담겨있는 만두만큼이나 소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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