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구두 나의 코고무신

by 개울건너

서평 모임에서 진행자가 물었다. “당신 인생 최고의 명장면은 무엇입니까.”



신혼 때였다.

밤이면 산토끼가 내려와 발을 맞대고 잔다는 산 아래 마을, 어머님 댁으로 휴가를 갔다.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던 밤이었다.

돋보기의 한쪽 테가 떨어져 나가고 남은 고리에 고무줄을 엮어 만든 걸이를 귀에 걸고 바느질을 하시는 어머니를 곁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어머니는 늙어가는데 가까이 있는 죽음이 무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죽는 거 안 무서우세요?”


어머니는 바느질을 계속하며 대답하셨다.

“죽는 거야 그때 가서 생각 허지.”

나는 말을 이었다. “나는 죽는 거 무서운데..”

그때 어머니는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당신 팔뚝의 한 곳을 다른 손의 엄지와 검지로 집어 흔들며 말씀하셨다.

“이거 아무것두 아니여. 흙이여 흙, 그냥 흙인겨. 죽는 게 무섭다니 아직 애구나.”

두 손가락에 잡힌 어머니의 팔뚝 살거죽이 맥없이 흔들렸다.

며칠을 지내고, 나중에 내려온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날 아침이었다. 어머니는 굽은 허리로 흙 묻은 내 구두를 깨끗이 닦아 댓돌 위에 올려놓으셨다. 툇마루에서 내려와 신는 방향으로 가지런히.


다음 해 봄에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나는 14평 아파트의 좁은 욕실에 쪼그려 앉아 대야에 따뜻한 물을 붓고 가루비누를 풀었다. 어머니가 신고 오신 먼지 얼룩 묻은 코고무신을 그 비눗물에 담갔다가 꺼내 수세미로 안팎을 닦았다. 여러 번 헹구자 하얀 고무신이 뽀득 소리를 냈다.

나는 물이 빠지도록 그 고무신을 욕실 벽에 가지런히 세워두었다.

어머니가 내 구두를 닦아 놓아주시는 모습에서 ‘섬김’이라는 것을 내가 놀라며 배운 건 아니었을까. 더구나 윗분이 아랫사람에게 그렇게 하셨으니..


어머니는 팔 년 뒤에 흙으로 돌아가셨다.

서평 모임에서 다시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 인생 최고의 명장면은 시어머님의 하얀 코고무신을 닦던 젊은 날의 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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