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이 시작됐네요. 돌아보면 내 불행의 이유는 시작하자마자 최고의 결과를 원했기 때문이었지요. 나는 지난달에 실눈을 떴지만 추워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요. 실눈 뜨자마자 바로 꽃으로 활짝 피어나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할뿐더러 순리를 무리하게 거슬러 오른다면 낭패를 본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삶은 기다려야 하는 날들이 숱하다는 것도 이미 알기에 차분히 기다리고 있어요. 날이 풀리기를.
큰 성과는 작은 노력이 오래 모여서 이루어지지요. 이제 눈을 크게 뜹니다. 기지개를 켜고 앞으로 이룰 큰일을 위해 작은 시작을 해요. 꽃샘바람이 많이 불어오지만 가끔 묻어오는 훈풍을 살뜰히 챙겨 안으며 친구들과 함께 하루하루 꽃을 만들어갑니다.
부서진 팝콘의 한 조각만한 크기로 몸을 키웠어요. 삼월 중순이지요. 머지않아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 거예요. 삶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서두르지 않고 바르게 살아도 세상은 예기치 않게 훼방꾼을 보내기도 하는군요. 찬 바람이 진눈깨비를 몰고 와 꼬물거리며 일하고 있는 우리를 마구 때렸어요. 너무 춥고 아파요. 이러다 우리는 모두 얼어 죽게 될지도 몰라요.
그러나 이게 또 웬일인가요. 세상이 우리에게 죽음의 공포를 줄 때 위아래 사는 이웃이 예상치 못한 도움을 주는군요. 위에선 나뭇가지들이 우리들에게 딱 붙어 바람을 막아주고 아래에선 흙이 만약을 위해 미리 감춰뒀던 온기를 꺼내 가만가만 올려 보내주네요. 우리는 가지를 꽉 붙들고 흙이 보내주는 온기에 몸을 녹이고 있어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이에요. 이제 삼월 말로 접어드는 거지요. 따사로운 오후 봄 햇살 아래서 농부들이 밭을 가는 트랙터 소리로 대지가 활기찹니다. 우리도 그 소리에 맞춰 춤을 추어요.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네요. 우리도 그들처럼 차분히 일을 하지요. 병아리 떼가 잰 걸음으로 종종거리며 제 엄마를 따라다니네요. 우리들도 어서 피어 세상 구경 나가자고 얘기해요.
삼월의 끝 지점에 서있습니다. 아침과 낮의 일교차가 크네요. 남녘에선 꽃 소식으로 두런거리는데 강변인 이곳의 아침은 아직도 추워요. 우리는 아침추위의 진통으로 성장을 주춤거리고 있어요.
따뜻해진 오후에 호미질 하던 텃밭 주인이 허리를 펴곤 우리를 쳐다보며 한마디 하네요. 꽃 참 더디게도 핀다고. 우리끼리 속닥거렸죠. 자기는 아침 일찍 나오다가 춥다며 도로 들어가 난로 쬐고 있다가 이제야 나와 일하면서 아침 내내 밖에서 떨었던 우리들한테 저게 할 소리냐고.
다시 아침이 열렸어요. 우리는 오돌 오돌 떨면서 얘기해요. 지난날 부딪쳤던 그 죽음의 공포에 비하면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리고 다짐합니다. 그 위기의 순간에 우리를 살려준 나뭇가지와 흙에게 고마운 마음 영원히 간직하자고. 그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살아남아 그때를 얘기하고 있으니 이것이 기적이라고. 감사와 기적을 얘기하고 있는 지금 우리들의 옆구리에서 막 펴지기 시작합니다. 작고 하얀 다섯 개의 꽃날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