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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변 Feb 20. 2024

돌고래인간 꼴찌인생 스타트!
(첫 번째 꼴찌)

돌고래인간이 도대체 잘하는 게 모야? 자기 이해를 찾아 떠나는 여행 1

돌고래의 IQ는 80-90 수준이다. 나는 돌고래인간이다. 무엇을 배워도 남들보다 느렸다. 열정과 투지는 대단해서 계속 노력했다.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 공부를 잘하고자 했던 첫 번째 도전기를 나눈다.




노력의 배신... 그 웅장한 서막이 열리다


처음으로 1등을 해본 기억. 초1 때 운동회 때 6명씩 짝을 이루어 달렸다. 그 경기에서 1등을 했다. 사진처럼 야무지게 뛰면서 눈이 콩알만 해졌다. 에이~ 저 눈보단 큰데...

이 사진 이후로 달리기도 공부도 1등을 한 적이 없다. 무엇을 하든 꼴찌에 가까워진다. 


평생 못해 본 1등을 너무 빨리 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난 후 어머니는 평생 워킹맘으로 사셨다. 혼자 남겨진 나는 무료했다. 뭐라도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 현경이를 보며 "나도 공부를 잘해보고 싶다"라는 동기부여를 했다. 이전까지 공부를 잘했던 학생은 아녔지만, 그리 못하지도 않았다. 시험을 보면 평균 80점 정도의 학생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기로 작정했다. 초등학교 4학년 1학기에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대망의 시험결과가 기다려졌다. 젠장 성적이 아주 조금 올랐다. 시험 평균이 85점으로 이전보다 5점 올라갔다. 흔히 올백이라 하는 All 100점을 맞는 친구도 있고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은 평균이 95점 이상이었다. 어린 나이에 상당히 실망했다. 이것이 나의 첫 노력의 배신이었다. 


"2달 정도 열심히 공부했는데, 겨우 이 정도 점수야?" 크게 충격받은 나는 공부를 안 하기로 맘먹었다.


노력하지 마! 남는 것은 배신감뿐


공부를 포기한 결과 다음시험에서 평균 60점 정도를 맞았다. 공부를 포기한 채 5학년에 올라갔다.



꼴찌시작은 멸시받기의 시작


5학년 때 원기라는 친구가 있었다. 원기는 맨날 코딱지를 파고 콧물을 자주 흘렸다. 별명은 콧물소년. 콧물소년은 눈치가 없으면서 착했는데 콧물을 닦은 손으로 내 물건을 만질 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5학년이나 되어서도 위생관념이 약한 원기는 콧물을 만진 후 엄지와 검지 사이를 붙였다 떼었다 하는 콧물장난을 하곤 했다. 피자치즈가 늘어나듯 콧물로 장난을 친 콧물소년 원기. 콧물의 탄성과 복원력을 실험했던 것일까? 아인슈타인과 같은 실험정신을 가진 그의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원기의 아버지는 시장에서 점포도 없이 리어카로 과일을 파는 장사꾼이셨다. 이 녀석과 나는 가난한 집의 공부 못하는 아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콧물소년은 나와 다르게 참 밝았다. 장기 자랑에 노래를 하겠다고 무대 위에 올라기도 하고 좋아하는 여사친에게 공개 고백도 할 줄 아는 유쾌한 친구였다. 반면에 나는 매사에 소심하고 소극적이었다. 본인의 콧물에 관대한 만큼 낙천적인 그가 한편으로 부러웠다. 


둘 다 공부를 참 못했었는데 이 녀석과 내가 성적으로 붙었다. 결과는 원기가 이겼다. 나의 평균점수가 53점이고 원기는 55점이었다. 모두가 원기가 우리 반에서 공부 꼴찌라고 생각할 때, 새로운 대항마가 바로 나였다. 창피했지만, 공부에 관심이 없는 척 쿨한 척했다. 다행히 친구들에게 내 점수를 들키지 않았다. 낙천적인 콧물소년은 내 성적에 관심 따위가 없었다.


당시 내 짝꿍은 희진이란 여자아이. 까무잡잡한 희진이는 눈도 커서 이국적인 느낌이었다. 그녀는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모범생이었다. 수업시간에 발표도 잘했다. TV에서 본 인도사람을 닮아 내가 지은 별명은 인도사람. 인도사람은 성격이 까칠했는데, 책상을 반으로 나눠서 넘어오지 말라고 했다. 


한 번은 나와 시비가 붙었고 아주 크게 싸웠다. 그녀는 내가 공부를 못하기에 말도 잘 못할 줄 착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논리에서 완전히 밀렸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말싸움을 기똥차게 잘했다.


싸움 이후 인도사람이 나에게 한 말...


"X신!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 희진이와 다른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6년 뒤 다시 만났다. 그녀는 여전히 까무잡잡하고 눈이 컸다. 우리가 만난 곳은 대학교 신입생 OT. 친구에게 저주를 퍼부은 대가일까? 인도사람과 나는 운명처럼 같은 대학을 입학하게 됐다.


그녀가 공부를 안 한 걸까? 내가 공부를 잘해진 것일까? 비밀은 차차 알게 된다. (웃음)


비록 그녀는 우리 대학 이공계열에서 가장 인기 많은 간판학과였지만, 나도 인문계열에서 인기 많은 경영대였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렇게 같은 대학의 동문이 되었다. 그녀를 대학에서 보자마자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라는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났다.


인도사람과의 재회스토리는 잠시 덮어두고 다시 초등 시절로 돌아간다.



상처받은 영혼은 대리만족을 찾는다


사람 마음 참 이상하다. 공부로 인정받지 못한 상처를 다른 곳에 풀게 되어있다. 노력의 배신 이후 공부를 포기했다. 허전한 마음에 봄가을만 되면 과학상자와 고무동력기를 만드는 대회에 출품을 했다. 그리고는 장려상이라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장려상정도는 참가만 하면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참가자수가 많지 않았기에.... 어릴 적 상장을 보면 공부로 받은 상은 없고 과학상자와 고무동력기로 받은 상만 있다.


4학년 때 첫 번째 노력의 배신을 당했지만, 그때는 이유도 모르고 상처만 받았다. 그 이후로 초등학교 내내 공부를 못했다. 콧물소년보다 시험점수가 낮았고 인도사람에게 무시당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냥 그렇게 졸업했다. 공부해 봐야 자신이 없었으니까. 


겨우 몇 달 열심히 해보고 포기했던 어린 시절은 겁쟁이였다. 하지만, 짧게 도전하고 실패했기에 몇 년 후에 다시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 된다. 노력의 배신이 이어질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어린 시절 나의 고민이 귓가에 들려온다.


공부 말고 잘하는 게 무엇일까? 다른 거 하면 되지 뭐



첫 번째 꼴찌에 속상했지만, 절망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또 도전하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부만 아니면 돼"라고 착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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