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의 IQ는 80-90 수준이다. 나는 돌고래인간이다. 무엇을 배워도 남들보다 느렸다. 열정과 투지는 대단해서 20년 이상 계속 노력했다.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오늘은 야구 선수 도전기를 꺼내본다.
쿵쾅쿵쾅 가슴을 뛰게 한 리틀야구
죽마고우 친구 윤태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볼살이 빵빵했다. 부드러운 성격과 반대로 아주 지독하게 뻗히는 모질의 까까머리 윤태. 윤태에겐 한 터울의 형 준태가 있었다. 준태는 반곱슬머리에 호리호리한 체형. 성격은 가끔 욱하고 까칠했다. 그런 준태는 종종 윤태를 때렸다.
윤태는 형에게 맞는 중에도 웃으면서 "멍청아"라고 형을 놀리던 낙천주의자. 우리 셋은 어린 시절 종종 야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놀이터에서 야구 유니폼을 입은 멋진 녀석을 보았다. 키는 대략 나만해 보였는데, 흰색 스트라이프 유니폼에 축구화 비슷한 하얀색 신발을 신은 친구가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흰색 운동화는 야구 전용이고 스파이크라 불렸다. 윤태와 준태형과 함께 셋이서 야구 선수를 보며 말했다.
"와 야구 선수인가 보다. 멋있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터 근처에서 운명과도 같은 전단지를 본다. 전단지에 쓰여있던 글은 "리틀야구 단원 모집"
직감적으로 지난번 야구유니폼 소년이 리틀야구 선수임을 깨달았다. 공부를 못했던 나는 야구에 도전하고 싶었다.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엄마 나 리틀야구 배워보고 싶어"
"야구 학원 같은 거니? 미안하지만, 우리 집 형편에는 힘들 것 같다"
온 집안에 붙여진 차압딱지
어머니에게 거절당한 뒤로 한 달 이상을 졸랐다.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연습장 종이를 모두 뜯었다. "리틀 야구"라고 자필로 적고 그 종이를 온 집에 붙였다. 화장실, 방문, 집의 모든 곳에 50장 이상 붙였다. 어릴 적부터 의욕이 남달랐다. 지금생각해 보면 부모님께 죄송하다.
부모님은 졸지에 채무자가 되셨고 아들은 채권자였다. 땡깡쟁이 아들을 둔 부모의 채무. 아들이 차압딱지를 집에 붙였다. 내용만 리틀 야구였을 뿐. 빚을 갚으려면 리틀야구를 시켜야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욕심이 많았다. 조르기를 시작하면 한 판승을 따내는 유도스타처럼 포기를 몰랐다.
"너 정말 야구 잘할 수 있니?"
라는 조르기의 승리가 임박한 소식.
"네 엄마 시켜만 주세요"
라는 마음은 이미 야구대회 시상대였다.
"그래 그럼 열심히 해봐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네 엄마 정말 고마워요"
야구훈련장을 찾은 첫날. 훈련장의 분위기에 압도 됐다. 기합과 구호를 외치며 전투적으로 훈련하는 선후배들. 검게 그을린 야구선수들의 얼굴이 처음엔 무서웠다. 그래도 훈련이 끝나면 유치함 풀풀 날리는 영락없는 초등학생이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멋진 유니폼을 받았다. 등번호는 12번. 형들이 워낙 말랐던 나에게 "빼빼로"란 별명을 붙여줬다.
매일 체력 훈련으로 시작해서 캐치볼로 몸을 풀었다. 그다음 타격 훈련과 수비 훈련을 했다. 빼빼로는 후보선수들과 매일 캐치볼을 했다. 말이 후보지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코 흘리게 동생들이었다.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의 차이를 알지 않는가. 훈련파트너는 어리지만 날쌘돌이 소리를 듣던 2학년 병우.
병우랑 훈련을 시작한 첫날 자존심 상했다. "저런 꼬맹이랑 짝꿍을 시키다니..."
나보다 머리 하나가 작았다. 하지만, 운동을 해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날쌘돌이 병우는 나이에 비해 운동능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훗날 우연히 TV에서 야구를 보는데 이상하게 병우를 닮은 선수가 보였다. 그리고 훗날 그는 미국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했다. 사람은 항상 뒤늦게 후회한다.
"그때 많이 친해질걸..."
아래는 날쌘돌이와 함께 부산 전지훈련 중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이다.(가운데가 병우이다)
가운데 병우. 왼쪽 빼빼로.
외야플라이 잡기 왜 나만 안될까?
빼빼로는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실력이 잘 늘지 않았다. 주력은 괜찮았다. 부족한 것은 파워와 수비 센스. 외야수라 플라이볼을 캐치하는 연습을 자주 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플라이볼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다. 다들 그런 게 아니다. 나만 그랬다.
물론 생각보다 외야플라이를 잡는 게 어렵다. 낙구위치 판단은 배트에 공이 맞는 순간 이루어져야 한다. 대개 일정시간이 지나면 낙구위치에 대한 감을 잡는다. 야구단 입단 동기 형이 있었다. 아무리 형이지만, 금방 낙구위치를 파악했다. 나만 문제였다.
처음에는 플라이 볼이 날아오면 기관차처럼 앞으로만 달렸다. 왜 공이 점점 위로 뜬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빼빼로는 "묻지마 직진"만 했다. 이내 공이 위로 떠오르면서 높아진다. 공은 머리 위를 훌쩍 넘어 빈 땅에 떨어졌다. 이것이 무한반복됐다.
1M 옆에 떨어지는 거라면 아깝기도 할 텐데, 낙구위치와 수비위치 간 거리는 10M가 넘었다. 저주받은 운동센스.
당시 아버지가 주로 나를 따라다니시며 나의 야구를 지켜보셨다. 그때 이미 부모님이 아셨던 것 같다.
내 아들이 운동에 소질이 전혀 없구나
4개월쯤 되니 외야플라이를 잘 잡았다. 하지만, 늦었다. 플라이볼을 잡기 시작할 때 부모님은 마음을 꽉 잡았다.
구단주인 부모님이 면담시간을 갖자고 호출했다. 야구 인생의 방출통보가 찾아온다. 부모님께서 다음 달 야구 회비를 못 내겠다고 재계약하지 않으셨다. 말라깽이 빼빼로는 야구선수로 저니맨이 되었고 강제 은퇴했다.
사실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시며 이제 그만하자고 하신 거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엄청난 재능이 보였다면 어떻게든 밀어주시지 않았을까?
야구 그만두고 2달 뒤였다. 부모님이 야구 유니폼 입고 밖으로 나오라 하셨다. 그리고 조촐한 은퇴식을 시켜주셨다. 야구를 했다는 추억을 남겨야 한다며 급하게 사진만 찍었다. 정말 달랑 사진만... 내 표정이 좋지 않다. 저 삐딱한 고개는 나의 삐딱한 마음이었을까?
운동에도 소질이 없던 야구 꿈나무. 12번 빼빼로는 공부에 이어 다시 한번 노력의 배신을 당했다. 그리고 타의로 은퇴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잘하는 걸까? 공부도 운동도 평균이하다. 초등학생의 아픔이 느껴진다. 어린 초딩의 판단에도 노력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다시 사진을 바라본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슈퍼스타 병우와 함께 찍은 사진 속에서 추억과 아픔이 동시에 느껴진다. 역시 운동도 머리가 좋아야 한다. 이때 까지는 내가 돌고래인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나의 고민이 귓가에 또다시 들려온다.
공부도 운동도 못하는 나
나는 도대체 잘하는 게 무엇일까? 딱 하나라도 찾고 싶다.
공부꼴찌를 하고 야구를 시작했다. 야구를 그만두었으니 무엇에 도전할까?
꼴찌 인생을 받아들일 때도 됐는데...
잘하는 것이 없어도 무기력은 더 싫었다.
이때부터 오뚜기 정신을 갖고 계속 일어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변태같은 욕심쟁이의 실패여행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