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퇴근길 지하철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퇴근길 지하철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녹초가 된 몸으로 겨우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잠시 후, 정거장에 도착한 지하철 문이 열렸고, 한 노신사가 탑승했습니다.
그분은 노약자석 앞 손잡이를 붙잡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50대 여성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여기에 앉으세요."
하지만 뜻밖에도, 노신사는 매우 큰 목소리로 거절하셨습니다.
"나 노인 아니에요!"
누가 봐도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었습니다.
자리를 양보하려던 아주머니는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죠.
그리고 지하철 안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노신사는 환한 얼굴로 우렁차게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몇 년 전에 겨우 칠순 잔치 했는데, 내가 어찌 노인이겠소?"
"일어서서 가는 게 편합니다!"
그 순간,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눈치를 보며 입을 막고 웃던 사람들도 점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신이 나신 듯, 노신사는 더욱 힘차게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내 다리가 얼마나 튼튼한지, 맨날 산에 오르지!"
"나는 노인이 아니야!"
그의 당당한 '젊음 자랑'에 지하철 안은 어느새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피곤했던 퇴근길, 그날의 지하철은 유쾌하고 행복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첫 직장 시절, 회사는 저를 억누르는 거대한 산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제 부족함을 탓하는 것만 같았고,
자존감은 매일 용광로 속에서 녹아내렸습니다.
그 시절, 제 입에 가장 자주 붙어 있던 말은 "짜증 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날의 지하철 노신사가 떠올랐습니다.
그분처럼 긍정적인 말을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짜증 나"라는 말을 줄이고, 불평을 조금씩 삼켰죠.
몇 개월이 지나자, 주변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대화의 분위기도 훨씬 밝아졌습니다.
유쾌한 말과 긍정적인 생각이 가진 힘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봅니다.
나는 혹시 부정적인 말들로 하루를 채우지는 않았을까?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망치지는 않았을까?
노약자석을 당당히 거부했던 그 멋진 노신사. 지금도 건강히 산을 오르고 계실까요?
할아버지 여전히 건강하세요?
그날처럼 힘차게, 유쾌하게 걸음을 내딛고 계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