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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변 Dec 12. 2024

빼앗긴 밥상에도 김치찌개는 오는가

체스로 배우는 초등학생 성장 실험(세 번째 이야기)

은행 빚 보다도 무서운 체스 빚!


다음날이 밝았다. 아들은 엄마에게 아빠 언제 퇴근하냐고 닦달을 한다. 함께 체스를 두어야 하기 때문. (지난 편 "패배를 간절히 기다리는 아빠의 속마음" 참고)


아빠는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김치찌개 냄새가 진동한다. 꼬르륵 소리를 참으며 젓가락과 숟가락이라는 연장을 들고 본능적으로 식탁에 갔다. 두둥! 큰 반전이 있었다. 식탁엔 밥상이 아닌 체스상이 놓여있었다. 그것도 흑과 백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즉각 전투태세였다. 


식전에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결과는? 이날도 아빠 승! 신기한 점은 패배 울며 불며 난리 나던 아들이 사라졌다. 이민을 갔나? 영어캠프라도 보냈나? 울보의 눈에 습기가 사라지고 건조하게 패배를 받아들인다. 패배를 털고 도전하는 사이클이 빨라졌다. 물론 아들의 실력도 일취월장.


아들은 호기심이 매우 강하다. 그리고 책 읽기가 생활화되어 있다. 매일 체스 전략책을 찾아보고 아빠를 이길 방법을 연구했다. 점점 코딩 수준으로 변했다. 확률적으로 높은 공격과 수비를 하기 시작한다. 점점 아빠가 질 것 같았다. 잔머리 황제 아빠는 묘안을 생각했다.



교과서 전법을 이길 방법은 탈 교과서뿐!


아빠의 발악이 시작됐다. 삼국지의 제갈량을 모티브로 삼고 아들에게 심리적 대미지를 안겼다. (제갈량은 죽어서도 사흘 만에 목각 인형으로 부활했다. 예수님처럼 부활한 그는 적의 참모 사마의를 농락했다) 핑계지만, 아빠는 생업이 바빠 체스를 연구할 시간이 없다. 그래도 쉽게 지는 것은 NO! 벼랑 끝 전술처럼 이상한 수를 두기 시작한다. 가령 적군과 일렬로 만나서 백병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재롱잔치를 펼쳐 아들을 기만했다. 


유령 같은 전법을 구사하는 아빠! 아들에게는 공포영화였다.


기만술이 성공하면 상당히 통쾌하다.(아들아 변태 같은 아빠를 용서해 다오) 아빠는 매일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부린다. 아들의 멘탈은 탈곡기처럼 탈탈 흔들린다. 그날도 아들의 표정은 "뭐야 도대체 이런 이상한 수는?"이었다. 교과서에 없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녀석이 준비해 온 빌드업이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결국 이날도 아들은 패배했다. 하지만, 아들은 정말 강해졌다. 아빠의 시간 끌기 전술에 종종 말리던 부분도 개선됐다. 게임이 루즈하면 실수하곤 했는데 '덤벙덤벙이'가 '침착이'를 사귀며 사라졌다. 아빠입장에선 흐뭇하고 좋았다. 이제 아들의 문제는 단 한 가지! 빈집털이를 당할까 봐 공격을 못 나왔다. 소심한 부분만 개선되면 솔직히 아빠가 질 것 같다.


아들의 성장을 위해 절대 봐주지 않는 아빠! 

그날은 잘 때 1급 군사 기밀을 오픈했다.


"아빠 사실 전략 없었어"

"네가 교과서 대로 둘 것을 대비해서 이상한 수로 너를 방해한 거야. 알겠지? "


아빠를 꼭 이겨!
수비만 하면 질 수밖에 없어!
아빠가 어떤 수를 두어도 네가 맞게 하고 있다면 흔들리지 마!



+뜨거운 체스 전쟁 후 빼앗긴 식탁에 김치찌개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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