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수를 세시는 하나님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으니 두려워 말라 (마 30-31)

by 감동의 날

새벽부터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날은 내가 미국에 입국한 지 정확히 7개월 되는 날,

미 항공 우주국 연구소가 있는 메를랜드 주 그린벨트라는 동네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무 연고가 없는 이곳으로 이사와 삼 일째 되는 날 나는 세 시간을 그대로 차 안에 앉아 있었다.

될 수 있으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한인 교회 교회 뒤편 주차장 한쪽 구석 나무 그늘에

차를 세우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막막할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곤란에 빠진 이 상황을 해결할 길이 없었다.


우리 네 식구는 한 달 전 버지니아주에서 여기 메를랜드 주 지하 셋방으로 이사 왔다.

나는 7개월 전에 먼저 미국에 입국했고 아내가 7살 5살 먹은 두 아들을 데리고 한 달 전에

미국에 입국했다.

우리 가족이 아무 연고가 없는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유는 이랬다.

내가 먼저 미국에 들어와 6개월여 생활했던 버지니아 주 애난데일에서는 네 식구가 살 셋방을

얻을 수가 없었다. 방을 구하려고 월세 살 사람 구한다는 신문 광고에 나온 집주인들에 전화를 해

얘가 둘이라면 방 하나에서 네 식구가 어떻게 사냐며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 버렸다.


그래서 버지니아 주에서 차로 운전해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위치한 메를랜드 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이 큰 미국 땅에 우리 네 식구 살 방 하나가 없고 마치 우리 가족은 정차를 못 잡고

넓은 바다에 표류하는 신세였다. 나는 그때 이민국에 관광비자를 학생비자로 교체신청을 해 놓고

영어를 배우러 ESL(외국어로서 영어) 코스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때 나는 입국하고 2주 만에 자동차 면허를 한 번 만에 취득하고

한국서 가져온 돈 탈탈 털어 길에서 포드에서 생산된 토러스 왜건 중고차를 2.800$(약 300만 원)에

샀다.


그날 아침 학교에 못 가고 교회 주차장에서 넋을 놓고 차 안에 그대로 앉아 있었던 이유는

차 기름값이 없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서다. 3일 전에 집에 남은 동전까지 다 털어

차 기름을 넣었는데 왕복 두 시간 걸리는 학교에 이틀 다녀오니 네 칸으로 표시되는 주유 표시등

게이지가 바닥 바로 위칸에서 간들거렸다. 이 상태로는 학교 가는 도중에 기름이 바닥나 길거리에

설 것 같았다. 어떻게 학교까지만 가면 반 학생 누구에게 사정해 또 이삼일 버틸 차 기름값을

꾸어볼 생각이었는데 도저히 학교까지를 갈 수가 없을 거 같았다.


아는 사람 한 사람 없는 이곳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차 기름값을 구할 길은 없었다.

동전 한푼 없는 지하 셋방에 가봐야 해결책이 있을 리 없고 그 와중에도 먹는 것이 부실해

영양부족으로 핏기 없는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집에 있는 아내는 오늘은 돈을 좀 마련해 돌아 올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 왔다. 여기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무슨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지난밤 돈 걱정에 잠을 못 자고 아침을 못 먹은 데다 새벽부터 애를 타고 서너 시간 앉아 있어선지 정신이 몽롱해져 갔다. 비몽사몽 상태가 되어가는데 누가 차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창문을 내리니 60쯤 되는 남자 얼굴이었다. 나중에야 교회에서 허드렛일을 하시는 나이가

예순이 넘은 고씨 성을 가진 교회 사찰 집사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에게 “왜 이러고 있어요?

안으로 들어가려다 교회에서 보지 못했던 낯선 차가 있길래 한 번 와 봤다"라고 했다.

나는 “속이 좀 안 좋아서 속이 차분해 지기를 기다리며 차에서 쉬고 있어요.” 하니,

“그래요, 얼굴이 많이 창백해요, 빨리 집으로 가서 쉬어야겠어요” 하길래

“얘, 조금 더 있다가 가야지요.” 했더니 “어서 그래요”하고는 교회 사무실로 가시다가는

다시 내차로 돌아오셨다. 또 차 창문을 두드려 창문을 내리니 그러지 말고 일단 사무실로 들어와

차라도 한 잔 하라고 했다. “ 얘, 얘, 됐습니다. 저 신경 쓰시지 말고 어서 들어가세요.” 했더니

그러지 말고 어서 나오라고 차밖에 서서 기다리고 계셨다.


할 수 없이 차에서 내려 고 집사님을 따라 교회 사무실로 들어갔다. 커피 포트로 물을 데워 봉지 커피 한 잔을 타주어 달콤한 커피를 마시니 비 오는 새벽 찬공기에 굳었던 몸이 금세 풀어지며 속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 집사님이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여요, 몸이 어디 아픈가요, 아니면 무슨 걱정이 있는가 봐요?” 하시길래 “뭐 그냥이요’ 하고 얼버무리는데

“내가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무슨 이유인지 말이나 한 번 말해 봐요"라고 하셨다.


나는 멈칫거리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사실은 학교에 가야 하는 데 차 기름값이 없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운전하다 기름이 떨어져 차가 길에서 설 것 같아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 집사님은 “응 그래서 그랬구나, 오늘 아침 집에서 나오는 데 우리 집사람이 돈 봉투를 하나

주길래 나 돈 필요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내 바지 뒷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 주더니 이 일

때문이구먼.” 하고 대수롭기 않게 말씀하시며, 바지뒤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주며

" 학교 늦기 전에 어서 빨리 출발하라고 했다. 나는 사정이 되는 데로 곧 갚겠다고 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차 안으로 들어와 봉투를 뜯어봤다.


거기에는 50$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 돈이면 20$ 어치 가스를 넣으면 일주일간은 학교 등하교를 할 것이고 남은 돈 30$로는 학교에서 돌아오며 한국 그로서리 가서 조그마한 쌀 한 포대를 사면 또 일주일은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교회에서 차를 돌려 나와 학교로 가는 도중 “아, 지금 우리 네 식구가 이 넓은 땅에 표류하며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보잘것없는 우리 가족을 하늘에서 세심하게 지켜보는 분이 한 분 계시 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울컥하며 눈물이 주르륵 나더니 차 앞 시야를 가릴 정도로 계속 흘러나왔다.


오늘 새벽까지도 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앞날의 대한 극도의

불안감이 마치 호수 위에 떠있던 자욱한 안개 무리가 아침 햇살에 굴복해 물러가듯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내 마음 밑바닥에서 뭔가 꿈틀거리며 불끈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래, 이 땅에 일가친척, 친구 한 명 아무 연고가 없지만 오늘 아침 보니 우리 가족을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한 분 계셨구나, 나는 살 수 있다, 당분간 고생이 되겠지만 나는 이 고립무원의 땅에서 충분히 살아 나갈 수 있다"는 말을 거듭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일 이후로 누가 뭐래도 나는 확실히 믿고 또 믿는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 딸들의

머리카락 수까지 다 헤아리며 정도로 하늘에서 세심하게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그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날 아침 교회 뒤 주차장 나무밑에서 차 기름과 식량이 다 떨어져

한 발짝도 오도 가도 못하고,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다 정신이 혼미해 가는 순간에,

하나님이 고 집사님을 동원해 내 차 기름값과 식량살 돈 50$를 미리 마련해 놓고 계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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