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환(生還 살아 돌아오다)

그날 나는 워싱턴 D.C 공사 현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by 감동의 날

그날은 미 합중국의 수도 워싱턴 D.C 공사 현장,

내가 건축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여름 장마철 하루였다.

우리 회사는 건물 바깥쪽 그러니까 사이딩, 윈도, 루핑(지붕) 공사를 하는 익스테리어 회사다.


신도시 현장은 토지 기반을 조성할 때 전선을 지하로 다 매설하기 때문에 공중에 전선이 없어

감전사고가 거의 없고 별로 위험하지 않다. 그때 우리 회사가 수주한 워싱턴 D.C 공사 현장은

백악관이 있는 중심에서 많이 벗어난 오래된 주택단지에 위치해 있었다.

집 몇 채를 헐고 새로 짓는 신축 현장이라 머리 위로 이리저리 고압선 가닥들이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얽혀있었다.

우리 회사 내 서비스 팀 바로 앞 나의 전임자가 그 옆 공사 현장에서 40피트 사다리를 세워 들고

이동하다 고압선에 감전되어 앰뷸런스가 도착하기도 전에 까맣게 타 그 자리서 즉사했다고 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아침에 출근하니 매니저가 우리 회사에 하청을 준 원청

회사 간부들이 내일 현장에 온다고 했다. 원청회사 간부급들이 총 출동하여 대대적으로 공사현장을 점검하는 그 회사의 연례행사다고 했다.

오늘 날씨가 안 좋지만 우리 회사에서 공사한 익스테리어 하자 공사를 몇 군데 해야 해 어쩔 수 없이 서비스 A팀이 워싱톤 D.C 현장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비에 하자 공사를 하라는 매니저가 제정신인가 의아했다.

공사 현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제기랄, 저번에 한 명 죽었으면 됐지...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에 한 명 더 황천대학 보내려고 아주 환장을 했구먼...

자기가 원청회사에 전화해 비 오는 날씨 핑계 대고 하자 공사를 좀 미루면 되지...

원청회사에 아쉬운 소리 싫어 처자식 있는 부하직원 목숨은 파리 목숨인가...

그저 자기 공과만 생각하는 정신줄 놓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고 매니저에게 욕을 해댔다.


현장에 도착했다 보니 요 며칠 비가 자주 온 데다 땅바닥을 중장비가 여기저기 짓이기고 다녀

현장이 진흙 뻘밭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다 하자 보수해야 할 위치는 신축 건물 높은 벽이나

지붕이어서 40피트(최대 12미터) 사다리를 전부 펴서 사용해야 했다.

같이 간 남미 온두라스에서 온 헬퍼 호세는 회사에 갓 입사한 신출내기 사원이었다.

신입사원이라 일머리도 모르고 체구가 작아 힘을 전혀 못쓰고 그저 사다리 밑에서 연장 심부름이나 하는 정도였다.

나는 하루 종일 그 40피트 사다리를 세워 들고 얼기설기 쳐진 전선줄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면서

일했다. 자세가 흐트러져 사다리가 기울어지거나 넘어뜨리면서 전선이 닿는 순간 그 자리서 바로

황천행이었다.

전선옆을 지나갈 때마다 모골이 송연,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두려움이 일었다. 일하는 내내

하도 긴장해서 그런지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는 비에 젖은 옷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온몸에서 나는 긴장감과 두려움에서 나는 땀 열 때 문인지 어깨 부분에서 많이 났다.

작업일지에 있는 일을 간신히 다 마쳤을 때 작업복은 진흙으로 범벅이 되고 앉았다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회사에 돌아오니 회사 식당에서는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워싱턴 D, C 공사 현장이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다고 온 직원이 모여 자축하는 의미로 기분 좋게 술 한잔씩 한다고 했다. 사장이 진흙으로 범벅이 된 작업복을 입고 나타난 나를 보고는 날씨도

안 좋은 데 수고 많았다고 하며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고 같이 술 한잔 하자고 했다.

트럭은 회사 주차장에 두고 택시 불러줄 테니 택시 타고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일찍 퇴근해야겠다고 하고 왁자지껄하는 술자리를 피해 나왔다.


집으로 오기 위해 트럭을 몰고 고속도로 달리는데 뺨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비 오는 날 하루 종일 감전사고에 노출된 위험천만한 작업현장에서 용케도 살아남아

멀쩡한 몸으로 가족의 품으로 살아서 돌아가는 생환에 대한 기쁨의 눈물이었고...

사망의 골짜기에서 살아남게 하루 종일 나의 안전을 무사하게 지켜준 하나님...

돌아가신 아버지를 비롯하여 여러 조상님들의 은덕에 대한 고마움...

여러 가지 복합된 이유로 인해 흘리는 눈물이었다.


며칠 후에 그 현장에서 회사는 다르지만 나하고 친분이 있는 남미 온두라스에서 온 뽈로모가

나처럼 하자 보수일을 하다 사다리가 전선에 걸리는 바람에 그 자리서 즉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대낮에 사고가 났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뽈로모를 덮친 저승사자가 저승대학에 이제 갓 취직한 신입 사원인가 보다

했다. 저번 비 오는 날 한국에서 온 한 놈, 비가 와 작업 환경이 더없이 좋아 아주 손쉽게 잡아갈 수 있었는데, 그놈이 안 죽고 꼭 살아야 할 중차대한 목표가 있었던지,


하루 종일 일하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원체 조심하는 통에 손쉽게 잡아 가 황천대학에

입학시킬 기회를 놓치고 빈손으로 돌아가 학생처장한테 된 통 깨지고 며칠간 혼자 분통을

터뜨리며 전전긍긍하다 홧김에 앞길이 창창한 젊은 놈을 대신 잡아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하면 나를 그때 무사히 지켜준 하나님과 돌아가신 아버지와 조상님들 큰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착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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