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50여 명 남미 노동자 속에 나는 옷을 제일 단정히 입고 있었다
그날 버지니아주 애난데일 큰길 사거리 7.11 편의점 건물 둘레에는
남미에서 온 일용직 근로자들 50여 명쯤이 서성거리며 모두들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하루 노동력이 필요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날도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동양인은 나 혼자라 기존에 그 장소에 자리 잡고 있는 50여 명의 남미 노동자들의
텃세 눈치가 보여 하루 일 당일을 시키려 찾아오는 각종 건축 업자나 개인들의 눈에 잘 띄는
앞쪽으로 나서지 못하고 7.11 편의점 건물 옆쪽 모서리 자동차 바디샵 앞쪽에 허기진 빈속을
달래려고 뜨거운 커피 한잔을 들고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때 7.11 편의점 앞 주차장에 고급 차 벤츠 500이 정차했다.
키가 훤칠하고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50대 중반의 백인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고급스러운 검은색 겨울 코트가 잘 어울리는 멋진 중년 신사는,
돈 잘 버는 전문 직업을 가진 미국 상류층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가 내리자 남미 일용직 근로자들이 우르르 그의 곁으로 다가서 에워싸며
무슨 일을 하려고 하냐고 묻자 그는 주위를 쭉 둘러보더니 남미 노동자들을 해치고 뚜벅뚜벅 내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 외 아유 프롬? (Where are you from?) 해
싸우스 코리아(South Korea)라고 대답했더니 차 타고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미국에 와 개인 집에서 일하는 것은 처음이고 더군다나 무슨 일인지도 몰라
내심 걱정이 많이 됐다. 내가 차 안에서 떠듬거리는 영어로 내가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는 웃으며 네가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직업이 군의관이고 한국에 파견 나가 2년 근무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을 많이 봐서 멀리서도 너를 보고 한국사람인지 금방 알았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How come?) 하니 그는 웃으며 한국 사람들은 옷을 단정히 잘 입더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날 아침 일용직 노동자들 중에서 깨끗하게 세탁된 옷을
눈에 띄고 표시 나게 제일 단정히 입고 있었다.
집으로 가서는 그는 오늘 내가 할 일은 집 지붕 처마에 달린 거러라고 부르는
비받이 물통에 차있는 나뭇잎 청소를 하는 일이라고 했다.
나뭇잎이 물통에 차 있어 지붕의 눈이 녹은 얼음물이 물통을 따라 집 네 모서리 하수구로
빠지지 못하고 물통을 넘쳐 현관문 앞으로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현관 앞이 빙판이 되어 집 현관으로 나오고 들어 가다 넘어지는 얼음판 낙상사고를
미리 방지하려고 하는 일이다고 했다.
나는 집 뒤 연장 창고에서 가져온 사다리에 올라가 집 둘레 물통을 말끔히 치워주고
땅으로 떨어진 나뭇잎도 깨끗이 청소했다.
나뭇잎이 가득 담긴 8개나 되는 대형 검정 쓰레기봉투를 쓰레기 치우는 덤프차가
가져가기 좋게 집 앞 우체통 옆에 4개씩 두줄로 나란히 잘 쌓아 두었다.
일이 다 끝나자 그는 역시 한국 사람들은 일도 깨끗하게 잘한다고 칭찬하며
원래 일용직 인건비가 시간당 10$ 이어 5시간 일했으니 50$만 주면 되는데 일을 만족하게
잘했다고 팁 30$ 합쳐 80$를 주었다.
그때 내 형편은 은행 계좌 오픈할 조건이 안 돼 은행 계좌도 못 열고 현금을 지갑에
가지고 다녔는데 지갑에 있는 돈은 고작 3.40$가 전부인데 돈 80$(약 9만 원) 이란
거액이 지갑에 들어오니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미국에 입국해 돈을 받고 한 첫 노동에서 “한국인은 옷을 단정하게 잘 입고,
일도 깨끗하게(cleanly) 잘한다”는 중년 신사에게 들은 칭찬은,
내게는 자그마한 국위 선양을 했다는 한국인의 자긍심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좋은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