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준비하는 것들
작년 초에 1년의 계약기간을 전제로 입사하였다가, 연장심사를 거쳐서 근무 기간이 6개월이나 늘어났다. 긴 시간으로 여겨졌었는데, 이제 3개월도 남지 않았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헤어짐의 시간이 또 다가왔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중의 하나가 그동안 같이 근무하고 있는 분들과 헤어짐이다.
얼마 전에 사무실의 한 분이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제출하였다. 모두 양가감정이 생겼다. 좋은 결과를 얻어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면서도, 먼저 떠나고 나면 빈자리가 많이 느껴질 텐데 어쩌나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다.
그분의 지원한 결과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유는 모른다. 단지 더 적합한 분이 합격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탈락한 분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라고 위안도 하고, 더 좋은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애써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도 했다. 한편으로는 먼저 떠나지 않게 된 것에 안도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마음이란 참 묘하다.
먼저 떠날 때의 서운한 감정이 있을 것은 감춰두고 그분의 도전을 모두 성원했었다. 지원서를 위한 경력에 참고하라고 정리한 실적을 보내주고, 자기소개서를 꼼꼼하게 검토해 주기도 했었다. 본인이 컨설팅하는 분이지만 자신의 면접에는 자신이 없어하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모의 면접까지 하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모두 한마음으로 잘되도록 지원하였다.
바라던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같이 근무한 분들과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아쉬움은 잠시이고, 그분의 앞길은 계속되어야 한다. 아니 그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새로운 앞길을 열어가야 한다. 그 시작을 알리는 용기에 감탄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여 내 일처럼 지원하였을 것이다. 바라던 결과까지 얻지는 못했지만 시작하였으니 앞으로 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여긴다.
오늘 아침에 ‘Justice, Happiness’에 이은 이이비 리그 3대 명강의라는 ‘Death’를 모두 읽었다. 이해한다거나, 내 것으로 만들 것을 찾는다는 단계에는 어림도 없고 그저 한 번 읽기를 마쳤다. 마음속에 느끼는 것은 많은데 막상 정리가 잘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 하나는 죽음은 어떤 형태로든 헤어짐을 의미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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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lly Kagan 교수가 이 강의를 시작한 것은 40대 때였었는데, 이순이 넘은 나는 아직도 이해가 모두 되지 않는다. ‘철학은 원래 어려운 것이야.’하며 넘기면 될 일인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학생 한 명은 마지막까지 이 강의를 수강했다고 한다. 그는 사고의 마지막 순간에 이 강의를 어떻게 평가했을지 궁금하다. 지적 호기심도 너무 많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아직은 줄어들지 않는다.
직장에서의 이직으로 인한 헤어짐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만날 수 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한다. 새로운 준비에 몸이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더라도 만남과 헤어짐과 그리고 헤어진 이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