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한 달 일정으로 유럽 여행을 떠났다.
MBA 과정 중에 있는 큰아들이 첫 학기를 마치고 한 달여간 일정으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기말시험을 마치고 준비 일정이 많지 않아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다가 갑자기 집안이 조용해졌다.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다.
MBA 과정에 입학하면서 기숙사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 학교에는 기숙사가 있고, 미혼이니 입소는 당연한 절차라 여겼었다. ‘드디어 나가는구나, 과정을 마쳐도 이제는 집으로 오지 말고 제 살 곳을 구해서 독립하라고 해야지’ 하면서 우리 부부는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바람이 무산되었다. 하필 기숙사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어 입소가 취소되었다.
학교까지의 거리가 짧은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집 구하기도 쉽지 않아서 통학의 어려움은 감수하기로 했다. 가끔 택시를 이용하기도 하였지만, 수강 시간을 조절하면서 잘 다녔다. 수업 시간에 빠짐없이 잘 다녔고, 1학기 학점도 기대한 만큼은 나온 것 같다. 그 덕분에 독립시키겠다는 우리 부부의 희망이 미루어졌다.
그런데 한 달여의 여행으로 인하여, 큰아들이 독립하고 난 이후를 미리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두 아들이 모두 고등학교를 기숙사에서 마쳤고, 대학에서도 약 2년간 기숙사 및 고시원을 사용한 적이 있어서 부부만 지낸 시간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늘 지원해 주어야 하는 것이 많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서 독립이라고 여기지 않았었다.
둘째가 먼저 직장과 관련하여 떠난 지 10년이 넘었고, 그동안 함께 살았던 큰아들까지 독립하고 나면 ‘장년 이후 부부만의 삶은 이런 생활이 되겠구나’하고 느낀다. 식사 메뉴도 입이 까다로운 아들을 고려할 필요가 없고, 늦게 들어오는 아들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잔소리할 대상이 없어졌는데, 말동무할 대상도 같이 없어졌다.
그나마 지금은 카톡을 통하여 매일 여행지 사진 몇 장과 간단한 소식을 보내준다. 독립하면 그나마도 점점 줄어들고 간격도 길어지겠지. 작은아들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거의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다. 큰아들은 성격이 다르고 지금은 대한민국의 장남이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글쎄 얼마나 갈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이제 우리 부부만의 시간을 다시 계획해야겠다. 지금처럼 작은 일이라도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경제적으로 아들들에게 의존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서로가 소원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사는 우리만의 생활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아들은 장가가고 나면 ‘아주 가까운 친척’이라고 여겨야 한다고들 말한다. 이제는 내 아들이 아니고, 며느리의 남편이자 손자들의 아버지로서 역할이 우선이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잘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장마철이 시작되고 유럽의 기상도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는 소식에 슬며시 걱정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