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글은 정보, 공감, 재미 중의 어느 것을 주는가.
“왜 글을 쓰려고 하세요?”
최근 읽고 있는 책의 저자는 강의를 병행하는데, 어느 기관에서 강의에 앞서 청중들에게 질문한 말이라고 한다. 강의를 듣는 목적이 다양하겠지만, 갑자기 질문을 받는다면 조리 있게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책을 보면서 이 문장에서 한참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읽히는 글은 정보를 주거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거나,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방향은 무엇인가? 나의 경험과 연륜으로 얻은 지식 또는 지혜의 일부를 같이 나누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공감을 위한 글쓰기인가. 누가 내 글에 공감할까?
지난달에 주 1회로 5주간 책 쓰기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20여 년간 출판사 편집일을 해 오신 분이었다. 강의 신청의 이유는 많았다. 우선 나도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하고 싶다.’라는 막연한 목표가 있다. 살아온 여정에서 나 혼자만 알고 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드는 부분들에 대하여 정리하고,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독자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퇴직을 하고 시간 여유가 생겨서 무엇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자는 생각에서 선택한 것이 ‘글쓰기 혹은 책 쓰기’였다. 병행하여 ‘에세이 쓰기’에 관한 강의도 신청하면서, 같이 신청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분들의 경험을 참고하고, 같이 격려하면서 진행한다면 혼자보다는 쉬울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강의를 마친 결론은 ‘아직 글쓰기 준비가 덜 되었다.’이다. 강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나름대로 부족한 부분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부분을 메우기 위하여 관련된 책을 대출하여 몇 권을 읽었다. 역시 부족한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글쓰기가 더 어려워지고, 지금의 진도대로 간다면 정말 ‘내 이름으로 된 책’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책을 보면서 단순히 ‘활자를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무엇인가 찾아내려고 한다. 작가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지, 그것을 진행하는 방식은 어떤지, 그분이 출간기획서를 작성했다면 어떤 내용이었을지 등을 상상하면서 읽게 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이분들은 어쩌면 이렇게 잘 썼을까?’하는 것이고, 나는 언제쯤 이렇게 조리 있게 내 생각을 펼칠 수 있을까 하면서 되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곡식이 여물었음을 보여주는데, 여문 생각들을 글로 표현해 보고자 했던 나는 어디쯤 가고 있는가. 화려하던 단풍을 떨쳐버리고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동네의 은행나무를 보면서, 화려해 보지도 못한 나를 본다.
하지만 아직은 나에게 남은 것이 많다. 우선 시간이 있고, 글을 쓰겠다는(또는 책을 내겠다는) 의지가 남아 있고, 그간의 강의와 독서의 결과로 제재는 풍성해지고 있다. 용기와 희망이 있다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무엇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를 정리하면서, 아직도 성장을 추구하는 의지가 남은 것에 감사하면서, 미래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그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