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오래 남는 여행을 위한 작은 준비
며칠 전, 지인이 말했다. “서울에 이팝나무가 이렇게 많은지 이제 알게 되었어요.”
공덕역 주변의 경의선 숲길을 수년째 산책하면서도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팝나무는 서울의 가로수 수종 중에 5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무실 주변에서 꽃을 피운 이팝나무를 알고 나서, 관심이 커지고 요즘 시선의 중심이 되는 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비단 알게 된 것은 이팝나무만이 아니다. 길을 걸으며 무심코 지나쳤던 가로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밑에 조성된 영산홍을 비롯한 키 작은 나무들에 대해서도 애정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특히나 지금은 오월, 계절의 여왕답게 다양한 꽃 무리가 주위에 다양한데 얼마나 눈길을 주었는가.
만들고 가꾼 분들의 땀과 마음의 노고에 대하여 새삼 감사 인사를 드린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쓴,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자기가 아는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여행을 계획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기행문을 미리 보고, 사진과 글로 대한 풍경을 현지에서 보면서 더 크게 감동하고 내 기억으로 만드는 것인가 보다.
여행 준비로 작아도 꼭 할 것은 여행지에 관한 공부다.
나와 아내가 의견 차이를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여행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는 나의 아전인수격의 해석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아내의 책임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나는 직업상의 이유로 전국의 여러 곳에서 근무했고, 생활하면서 둘러본 그 주변을 모두 여행이라 우긴다. 아내는 내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다.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살면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내의 말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알아주지 않아서 약간 서운하기도 하다. 커가는 아이들을 위해서 주변의 역사 유적지와 관광지는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많이 갔었기 때문이다.
경기도 양주시에 근무할 때는 법원리의 율곡 이이 선생의 유적지를 다녀왔고, 양평에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적지와 용문사 등지를 다녀오는 방법으로 작은 여행을 하였다.
그런데 아내는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 이유를 유추해 보면 그곳을 고르고, 알려 줄 것을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운전하는 나는 가고 올 길을 미리 살펴보고, 임진왜란과 화석정에 얽힌 사연, 수원화성을 위한 거중기에 관한 나름의 공부를 하였는데 아내는 아니었다. 결국 책임은 나에게 있는 셈이다.
나는 여행지에 가면 소개용 현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아내는 아이들의 동선과 먹거리를 챙기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니 아내는 길에 대해서도 모르고, 그 장소에 대해서 특별한 기억도 없다.
당연히 몇 년 지나고 나면 그곳에 대한 감상은 거의 사라지고, 살면서 여행 한 번 제대로 다니지 않았다는 원망만 남게 된다. 미안한 마음이 많다.
요즘 ‘마흔’ 즈음에 읽기를 강조하는 책이 많다.
얼마 전까지 자기 계발을 위한 책으로 스무 살, 서른 살을 강조하더니 달라졌다. 그런데 예순이 넘어서 보아도 참 좋은 내용이 많다.
그동안 모르고 살아온 것이 많음을 느끼며 책장을 넘긴다. 마흔으로 돌아간 젊은 마음으로 읽기도 하고, 아직 배울 게 많고 지적 호기심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또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