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어수선함 속에 퇴직의 아쉬움을 살짝 감춘다.
지난 금요일, 성탄절이 끝나고 올겨울 들어 최강의 한파가 왔던 날,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섰다. 연말까지가 계약기간이었으나 사용하지 않은 연차가 있어서, 다음 주 3일의 근무일을 대체하고 미리 퇴직 인사를 하였다.
그동안 같이 근무했던 정규직 직원들과 이른 새해 인사를 나누며 보이고 싶지 않은 등을 보인 채 발걸음을 빨리했다.
저들은 떠나는 나의 등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60세 정년을 지났으면서도 자기에 맞는 일자리를 찾았고, 큰 과실 없이 일했던 동료의 퇴직으로 볼까, 아니면 낮은 직급이지만 연장자여서 대하기 쉽지 않은 사람이 떠나는 걸 그냥 막연히 볼까?
매년 반복되는 일이기에 그냥 일과성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지 않았으려나 여겨진다.
나는 처음으로 도전하는 새로운 일이었지만, 정규직 직원들에게는 배정된 계약직 일자리에 매년 사람이 바뀌는 일은 그저 일상사일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동료였을까? 근무하는 내내 마주하는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고 따뜻한 웃음으로 대해 주었지만, 어디까지가 진심이었을까? 그 웃음과 친절은 직업정신이 만든 기계적인 대응은 아니었을까.
매년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이 당연하여 깊이 있는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같은 파트에서 일했던 직원들과도 내년이면 보직이 바뀌거나, 아예 다른 부서로 옮길 수 있어서 업무가 마무리되는 순간부터는 같이 나눌 공감대도 줄어든다.
그들에게는 다시 업무가 시작되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롭게 관계를 맺으며 일해나가야 한다.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했던 시니어는 되지 못했다.
칩 콘리가 쓴 <일터의 현자>라는 책을 다시 보았지만, 그것이 내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젊은 세대들이 경원시하는 소위 ‘꼰대’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싶지만, 젊은 정규직 직원들은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실 들을 필요도 없다.
나는 젊은 시기가 있었지만, 그들은 늙어 본 경험이 없으니까.
나는 경험이 많고, 경험이 주는 지혜를 갖추었으며 업무 수행 역량이 충분하다고 강변할 필요가 없다. 내가 담당하는 일은 경험과 지혜와 갈고닦은 업무역량을 요구하지 않는 단순한 일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이 근무하는 동안에 보여준 모든 행동이 진실한 마음에서 비롯되었겠지만 돌아선 순간부터는 서로 잊어야 한다.
그것이 퇴직 순간부터의 현실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 사무실, 손에 익은 업무를 뒤로하고 나오는 것이 무척 아쉽다.
아마 몇 번 지원하고도 다음에 할 일이 정해지지 않은 불안정한 상태가 그 아쉬움을 더 크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 일상의 흐름을 일정하게 하고, 나의 작은 역량이나마 필요한 곳을 찾아서 일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앞날의 과제이다.
내 퇴직과는 무관하게 송년회는 열렸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 위로받았다고 여기며 떠난다.
사무실에 있는 정규직 직원들도 연말의 인사이동과 맞물려 있어서 떠남의 의미가 희석되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 이제는 연말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든, 한파 속에서든 또 헤어질 수 있는 일을 또 찾아야 한다.
인연이 있어 만났을 테니, 언젠가 다시 반갑게 만날 날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