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안내자나 길잡이가 될 필요는 없다.
경칩이 지난 3월 초순, 아직 바깥은 꽃샘추위로 춥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으로 펼쳐지는 보현봉에서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능선을 본다. 아직은 눈의 흔적이 보여서 마음이 차지만, 곧 다가올 봄기운을 막을 수는 없다.
가수 최성수의 ‘동행’이라는 노래를 듣는다
.
“아직도 내겐 슬픔이 우두커니 남아 있어요 / 그날을 생각하자니 어느새 흐려진 안개
빈 밤을 오가는 날은 어디로 가야만 하나 / 어둠에 갈 곳 모르고 외로워 헤매는 미로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 있나요? /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우리는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한다.
누구나 저마다의 길을 걷고, 때로는 오르막을 만나 힘겹게 숨을 몰아쉬기도 하고, 때로는 내리막에서 속도를 조절하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주는 위안이다.
중국의 한 작가는 “길을 대신 안내해 주지는 못한다. 다만 혼자 걷고 있다고 여겨질 때 옆에서 걸음을 맞춰주는 동행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삶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누군가를 이끌거나 앞서가며 방향을 정해주는 게 아니라, 그저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관계의 힘이 아닐까.
노래 가사 중의 “따뜻한 동행이 될까”라는 구절과 닿아 있는 느낌이다. 노래 속에서 전해지는 그 따스한 마음은, 살아가며 가장 바라는 관계의 모습과 닮아있다.
나를 이해해 주고, 나의 걸음을 존중해 주며, 때로는 말없이 옆에 있어 주는 사람. 그것이 바로 동행이다.
사회관계 속에서 종종 누군가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부모로서 자녀를, 선배로서 후배를, 혹은 직장에서 동료를. 하지만 모든 관계가 반드시 ‘길잡이’와 ‘따르는 사람’으로 나뉘어야 할까? 오히려 서로서로 동행이 될 때, 관계는 더 깊어지고 따뜻해진다.
인생의 길은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지만,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발걸음은 큰 힘이 된다.
중장년의 삶을 돌아보면, 걸어온 수많은 길이 보인다.
그 길 위에서 나를 지탱해 준 것은 화려한 성공이나 눈부신 업적이 아니라, 곁을 지켜준 사람들의 존재였다. 친구와의 소박한 대화, 배우자의 묵묵한 배려, 자녀의 작은 웃음. 이 모든 순간이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의 길에서도 누군가의 동행이 되어야 한다. 이제 굳이 앞서가며 이끌지 않아도 된다. 다만 옆에서 걸음을 맞추며, 때로는 손을 잡아주고, 때로는 말없이 함께 있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따뜻한 사회적 관계의 모습일 것이다
.
동행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하루의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힘들어 보이는 이에게 건네는 짧은 격려, 함께 걷는 산책길의 발걸음.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서로의 삶을 지탱한다. 결국 인생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니라, 서로의 동행으로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동행이 되어 주는 삶, 그것이 나이 들어서도 가장 소중히 간직해야 할 가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