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가까워도 말하지 않으면 진심을 모른다.
오랜만에 소설책을 보았다. 일본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장편소설 <모성>이었다. “이 책을 다 쓴다면, 작가를 그만둬도 좋다!”라는 말이 ‘120만 부 넘게 팔린 밀리언셀러’라는 말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소설책을 읽지 않은 지 적어도 5년이 지나서, 그것도 평소에 크게 관심이 없던 여성들의 이야기로 구성된 책을 읽었다.
나이 들면서 여성 호르몬이 늘어난 건가?
아내에게 배달된 책이었다. 책은 일본 오사카 부근의 소도시에서 일어난 일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읽는 내내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와 흡사한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독자가 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등장인물이 단출하고, 이야기는 주로 엄마의 고백과 뒤이은 딸의 독백이 일인칭 시점으로 흘러간다.
‘같은 사실인데, 느끼는 게 이렇게 서로 다를 수 있을까?’하면서 자연스레 책에 빠져들었다. 자잘한 이야기들이 생생하고, 따라가다 보면 전체의 내용을 양면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매 장을 마무리하는 릴케의 시는 주인공 부부의 만남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딸에게 연결되는 감정을 종합하여 잔잔하게 감동을 주었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주의한 것은 ‘의사소통’이다. 소설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엄마’에게 ‘딸’은 외동자식이다. 사고로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살던 집이 없어져서 농사짓는 시부모의 집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의 엄청난 구박과 농사의 짐을 떠맡는다.
그런데 자기편을 들어주는 유일한 딸이 대화의 상대가 아니다. 그저 책임을 다하는 정도에 그친다.
딸은 가장 가까이에서 엄마의 고된 하루를 보고, 시부모에게 구박받으면서도 남편에게 전혀 위로받지 못하는 걸 본다. 엄마를 대신하여 할머니에게 바른말을 하고, 고모에게 대들면서도 막상 엄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칭찬받고 싶고, 쓰다듬어 주기를 바라고, 일상사를 나누고 싶어 하지만 바람으로 끝나고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무엇이 모녀 사이의 대화를 가로막고 있었을까? 친정엄마의 간절한 마지막 희망은 자기 대가 손녀에게 이어지게 하라는 것이었다. 친정엄마의 보이지 않는 가르침이 시부모에게 잘하라는 것이어서, 모진 시부모에게 의무를 다하면서도 딸에게는 곁을 주지 않는다. 해줄 건 모두 하지만 딸의 부족함이 정작 무엇인지 묻거나 살피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이 ‘모성’이다. 적은 등장인물이지만 여러 모성이 보인다.
주인공 엄마에 대한 친정엄마의 모성, 주인공 엄마의 딸에 대한 모성, 시어머니의 며느리와 대비한 지독하게 편협한 딸에 대한 모성, 첫째 시누이의 아들에 대한 모성 등. 작가가 여기서 말하고 싶었던 모성은 무엇이었을까. 임신한 딸이 출산하면 그 ‘모성’은 또 어떨까.
소설 속의 독백과 고백을 통하여 대화의 필요성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게 한다.
나는 부부간에 얼마나 대화하면서 이해하려고 하는가. ‘40년 가까이 살아가는데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겠지’라는 건 비겁한 희망 사항이다. 퇴직하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주 느끼는 현실이다.
서로 말하고,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은 가장 큰 배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