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원한 현역이고 싶다.
아침 출근길에 네 부류의 노인들을 보게된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되는 것 같다. 그 분들의 일상을 보면서 머지않은 미래의 내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어떤 일상을 보내는 노인이 될 것인가? 희망이라면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서 열심히 일하는 '영원한 현역'이고 싶다.
얼마 전 어느 분의 강의 영상에서 노인을 네 부류로 나누는 것이 문득 생각났다. 첫째는 ‘늙은이’다. 그 강사는 폐지를 줍는 노인을 늙은이로 지칭하였다. 두 번째는 ‘어르신’이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후 은퇴하여 아파트 관리실에 근무하면서, 아이들을 위하여 한자 교실을 열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는 노인을 이렇게 불렀다. 세 번째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골프, 여행 등의 취미활동을 즐기며 현역 때 보다 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을 말한다. 마지막은 ‘봉사’하는 노인들이다. 지역사회의 일 뿐만 아니라 종교단체 등에서 주관하는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노인들이다. 출근길에 만나는 노인들은 그 분류에 정확히 맞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점도 있다.
조금은 이른 출근길, 지나는 사람도 별로 없는 시간대여서인지 유독 노인들의 모습만 자주 보인다. 이제 신중년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게되었지만, 나는 아직 노인이 아니라고 애써 되새겨 본다. 적어도 나는 직장에 있고, 출근 중에 있으니까.
첫 번째 마주치는 분들은 구청에서 나누어주는 형광색의 조끼를 입으신 분들이다. ‘어르신 일자리’라는 글자가 등 쪽에 새겨져 있는 조끼이다. 동네 소공원에서 일정한 시간에 모이면, 어떤 분이 나와서 인원을 확인하고 쓰레기 봉지를 나누어주며 그 날의 일과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 후 두 분씩 짝을 지어 여러 골목으로 흩어져서 분배된 비닐봉지에 집게를 이용하여 담배꽁초 등의 쓰레기를 모으신다.
시간대에 따라서 어떤 날은 소공원에서 마주치고 어떤 날은 골목길 중간에서 마주치게 된다. 아직 마지막 마무리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이 분들은 상당히 연로하신 분들 같은데 무척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늦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출근길에 나서는데, 벌써 일과를 시작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옛날 시골에서 아침잠이 없는 노인들이 해도 뜨기 전에 마당과 골목길을 쓸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 분들은 위의 노인 분류에는 봉사하는 분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로 보게 되는 분들은 나이 많으신 할머니들이다. 얕은 붉은 벽돌 담장 밖의 조그만 공터에서 두 세분이 모여서 한담을 나누고 계신다. 그 중 한 분은 걸음걸이가 불편하신지 지팡이를 사용하신다. 거의 매일 모여서 말씀들을 나누고 계신데, 무슨 새로운 소재가 그리 많은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 분들은 퇴근길에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무심히 지나치지만, 고향 집에 계시는 어머니가 생각난다. 이제는 골목길에 같이 말씀 나눌 분들도 몇 분 남지 않았다고 힘없이 말씀하실 때는 무어라고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강사님은 이 분들에 대한 분류는 하지 않으셨다. 생활에 여유가 없지는 않지만 액티브하게 움직일 근력은 없으신 분들인 것 같다.
세 번째로 보게 되는 분은 세탁소를 운영하시는 분이다. 십여 년 전에 이 골목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알게 된 분이다. 연세가 적지 않으신데도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열고 영업 준비를 하신다. 문 밖에 큰 화분 몇 개를 두고, 올해는 가지와 방울토마토를 심어 놓고서 물을 주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신다. 커가는 것을 화제 삼아 인사를 드리면 흐믓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는 모습이 아주 좋아 보인다. 늘 같이 하시던 할머니께서 몸이 좋지 않으셔서, 작년부터는 혼자서 세탁소 일 전체를 하고 계신다. 일감이 많이 줄었다고 하시면서도 힘 있게 다림질을 하시고, 그 많은 세탁물의 주인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꼬리표를 달아두는 것을 보면서 직업인으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여겨진다. 퇴근 무렵에는 가끔 친구들과 어울려 약주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모임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아직도 힘든 일을 하셔야 하는 것에 대한 안쓰러움 보다는 기술이 뒷받침된 당당한 직업인으로서의 면모를 먼저 보게 된다.
마지막은 철거를 앞둔 건물 앞의 공터에서 모아온 폐지를 정리하고 있는 노인이다. 어제 밤늦게까지 폐지를 모았지만, 어두운 곳에서 정리까지는 할 수 없어서 아침 일찍 손수레에 정리하고 몇 백 미터 거리에 있는 고물상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동네는 골목길이 꽤 비탈진 편인데 그 연세에 힘들게 폐지들을 모으는 모습을 보면 괜히 시선을 돌리게 된다. 박스를 내놓을 때 가져가기 쉽고 오물 등이 묻지 않도록 조심하게 되는 것도 이 장면을 본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앞의 강사가 폐지 줍는 사람을 ‘늙은이’라고 분류한 것에 대해서는 왠지 폄하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동의할 수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경제적인 보상이 적더라도 재활용의 최 일선에서 일하는 것인데, 그 사람의 인격까지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남의 도움에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이른 아침부터 열심인데 그 일을 경시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닮고 싶은 모습은 무엇인가? 노인이라는 칭호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부터 자신의 일을 찾아 움직이는 모습이다. 김형석 박사님이 강연에서 늘 강조하는 것처럼 영원한 현역이고 싶은 것이다.
어느 책에서 ‘아침에 갈 곳이 있어서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모습이 무척 부럽게 느껴졌다’는 글을 보았었다. 그 때는 별 느낌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머지않은 미래에 내 모습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그 부러움을 스스로 느끼면서 아침 출근길에 오른다. 전 직장에서 퇴직 후 재취업하기까지 몇 개월의 기간이 있었기에 더욱 현실적으로 느낌으로 다가온다.
벌써 길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쉽게 찾을 수 없는 나이에 이른 것 같다. 그래도 끊임없이 도전하려고 한다. 지금은 비록 기간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그래서인지 퇴직 후에 대한 준비는 앞 직장에서 보다 더 실질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어디에선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반드시 있을 것이라 믿는다. 주변의 노인분들도 대부분 일하고 있지 않은가. 혹시 부족하면 채워서라도 가겠다는 자세로 새로운 취업 정보도 찾아보고, 자격증 공부도 하면서 또 다른 도전을 향해 오늘도 준비한다, 영원한 현역으로의 새 출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