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진짜 황금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노후에 자식들의 짐이 되지 않게 해 주세요.”노후에 접어든 어느 미국인의 기도문 일부라고 기억한다. 그 분은 상당한 재산가였기에 자식들의 ‘경제적인 부양’을 ‘짐’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하다. 그 분에게 짐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죽을 때까지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은 아니었을까?
‘60세에 정년퇴직하기 전까지는 열심히 살았지만, 퇴직 후에는 잉여의 삶, 즉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표현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스스로 짐이 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인가? 이런 자조 섞인 부정적인 표현은 그 자체로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더 이상 삶의 목표나 목적이 없이 패배감에 젖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단정하고, 피동적인 고단한 삶의 시작점을 스스로 만드는 것일 뿐이다.
‘유발 하라리’는 “지금 중장년의 지식은 젊은 층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급격하게 변모하고 있는 세태를 정확히 표현한 말이다. 오히려 나이 든 사람들, 즉 중장년이나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현대 디지털 문물에 대하여 배워야 할 시대이니, 무엇을 물려준다는 말인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옳지 않은 말이다. 즉, 지식과 지혜를 혼동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게를 지고 농사를 짓던 아버지에서 경운기와 트랙터를 사용하는 아들은 배울 것이 없는가? 경험과 구술로 전해지던 농사 관련 지식을 책으로 배우고, 인터넷으로 배운다고 하여 아버지에게 배울 것이 없는가? 수퍼 컴퓨터에 의한 일기예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된다고 하여, 선대의 지혜까지 모두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시니어들에게는 경험으로부터 얻은 귀중한 지혜가 있는 것이다.
덤으로 산다는 생각과‘내 인생의 진정한 황금기는 60세 이후부터다.’라고 피력하면서 긍정적인 자세로 자기의 삶을 펼쳐가는 자세는 매우 차이가 크다. 어떤 시니어 강사는 부양의 의무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경제적인 여유도 있으니, 정년퇴직 이후부터는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그런 자세를 전파하고 그렇게 살 것을 권유하는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배우고 싶은 삶의 자세이고, 지향점으로 삼아야 할 지혜로운 삶이 분명하다.
은퇴라는 것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현실에 맞추며 그저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덧 정년퇴직 시기에 도달해 있다. 은퇴를 생각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은퇴 후 달라지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과 그 시기를 위한 준비도 부족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정년퇴직한다고 가족에 대한 의무에서 모두 자유로워지는가? 정년을 전후한 사람들 대부분의 대답은 ‘아니요!’일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은퇴’라는 말이 언제부터 우리 곁에 있었는가? 풍족한 연금을 비롯하여 노후준비로 충분한 경제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은퇴라는 말은 사치다. 다른 무엇보다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정년퇴직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녀들을 양육해야 하는 의무에서 조금 벗어나더라도 노후에 생활비는 필요하고, 100세 시대라고 하는 고령화 사회에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의료비 등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률 1위라는 통계수치가 말해 주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을 끼인 세대라고도 한다. 부모님에 대한 부양의 의무는 남아 있지만 자식들로부터 봉양을 받을 수 있는 기대는 하기 어려운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노후에 대하여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으려면 내가 준비할 수밖에 없는데, 경제활동이 가능한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재취업의 문은 좁아지고 있고, 같은 시간을 일하더라도 소득은 줄어든다.
나는 열심히 살아왔고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정년퇴직 시기에 이른 지금까지 미훈인 두 아들에 대한 혼사걱정이 남아 있다. 결혼 연력이 점점 늦어지다 보니 내가 저들 나이일 때는 유치원생 학부형이었는데, 급하게 생각하지 않는 아들들은 태평하다. 결혼 비용을 얼마간 부담해야 하고 노후 자금을 준비해야 할 내 입장을 생각하면 자식들과 갈등의 요소가 숨어 있는 것 같다.
되돌아보니, 신중년이라고 불리는 지금까지 남다를 것 없이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고도 여전히 의욕과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찾았고, 퇴직과 재취업 사이에 실업수당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취업하여 현직에 있다. 그렇다고 노후 준비가 다 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삶을 ‘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 나은 시기를 위해 계속 준비하고, 도전하는 생활의 계속일 뿐이다.
‘가장 좋은 노후준비는 죽을 때까지 직업을 가지고 현역으로 있는 것’이라는 김형석 교수님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잉여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코 그 삶의 깊이를 모를 것이다. 익어가고 깊어가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나누면서 황혼으로 가는 인생의 멋을 누리고 싶다.
더 이상의 경제활동을 못할 시기까지 살 수 있다. 그 때를 위한 준비가 곧 노후준비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면서, 내 스스로 인생을 즐겁게 되돌아보고 마무리 할 수 있으려면, 현역생활을 연장하기 위하여 지금 더 활동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한다. 삶에 찌들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