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문 글지기 Apr 30. 2023

매일 정기적으로 갈 곳이 있다.

일상의 작은 질서도 때로는 즐거움이 된다.

직장 선배 중에 잦은 이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스스로 주말부부가 된 분이 있었다. 가족은 정착하고 본인만 직장 따라 이사를 하였다. 이 분의 월간 휴가는 통상 주말과 연계하여 금요일이나 월요일로 정하기 마련이다. 3일을 연속하여 가족과 다채롭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휴가 중의 월요일 어느 날 딸이 엄마에게 묻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왜 월요일인데 아빠는 아빠 집에 안 가요?” 아마 아빠가 휴가인 것을 몰랐을 것이다. 주말부부가 되고 나니, 가족이 아닌 주말에만 오는 손님으로 처지가 바뀌어 있었던 것이고, 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은 일상의 질서가 달라져야만 하는 불편함을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퇴직을 하고 아침에 출근하던 일상이 달라지면 집안의 질서가 바뀐다. 안주인 중심으로 움직이던 질서가 가장의 존재로 인하여 변화가 불가피한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불화가 생기기도 한다. 그 원인은 가장으로서 권위를 인정받기 원하고, 가정의 질서도 자기중심으로 움직이기를 바라는 남자들의 태도가 첫 번째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남자의 퇴직으로 인한 변화는 안주인이 전업주부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발생한다. 이것은 주말에 출근하지 않고 집안에 머무는 것과는 다르다. 주말에는 다른 가족들이 바깥일의 수고로움을 인정하여 존중과 배려를 보여 주지만, 퇴직 후에는 일방에서 쌍방으로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체험으로 배우고 절충하여 다시 새로운 조화를 이루어 내는 현명한 지혜가 가족 모두에게 필요하다.


이런 불협화음을 없애는 방법 중의 하나는 재취업이다. 재취업을 하면 다시 새로운 일상의 질서가 생긴다. 매일 정기적으로 갈 곳이 생기는 것이다. 어떤 여자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매일 화장하고, 옷단장하고 갈 곳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분은 출근길에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고 했다.


중장년의 재취업 일자리의 수입은 주된 일자리에 근무하는 것에 비하여 매우 적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실업수당을 받는 기간 중에는 “수입의 차액이 크지도 않은데 미리 취업할 필요가 있느냐?”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가능하다면 일찍 재취업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물론 취업은 확정되고 시기만 조정할 수 있다면 여유시간을 좀 더 가지는 것도 새로운 적응을 위해 필요하다.


고용센터에 실업수당 신청이나 구직활동 인정을 위해 방문하는 것 외에 외부 활동도 많지 않던 사람이 정기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생긴 것만으로도 활력의 정도는 달라진다. 행복과 즐거움은 이제 멀리 있지 않음을 여기서도 실감할 수 있다. 내 경우에도 그렇다.


주된 일자리에 재직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퇴직 후에도 ‘어떻게 되겠지.’하는 막연한 낙관론으로 퇴직 이후를 준비하지 못한 후회가 대표적이다. 주위에 드러나게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도 실제적인 준비를 미루는 원인이 된다.


퇴직한 선배들도 많이 대하게 된다. 여기서 간과하는 것이 있다. 퇴직한 '모든 선배'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이 후배들에게 나설 수 있는 사람들로 한정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잊혀 진다. 눈으로 자주 보지 못하면 자연히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지공도사라는 말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의 함축하는 말의 습관에 따라 지하철을 공짜로 이용하는 노인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목적을 가지고 탑승하는 사람들은 무료로 이용한다고 하고, 목적지 없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노년층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없이 그저 ‘공짜’로 탑승한다고 한다. 


이런 지공도사들은 퇴직 후에 후배들 앞에 나서지 못한다. 따라서 후배들은 준비 없이 보낸 시간들로 인하여 나도 지공도사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준비와 계획도 없으면서 ‘나는 아닐 것이다.’라는 환상에 젖어 있다.


왜 지금에야 이것을 느끼는지에 대한 회한도 있다. 네트워크의 제한으로 인한 정보의 부족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100세 시대가 나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삶이 되기를 희망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부터, 나부터 미래에는 후회가 적기를 바라며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한다.


지금 새로운 일자리를 얻고 출발하는 아침은 늘 즐겁다. 작년에는 혼잡한 대중교통 속에서도 혼자 즐거움을 느꼈는데, 올해의 직장은 시내 외곽방향에 있어서 한가로운 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출퇴근길 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모두 여유롭다.


언제까지 일을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각자 다르지만 자신의 능력이 소요되는 곳이 있다면 기한을 정하지 않고 일하겠다는 생각들이 대부분이다. 일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취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료하게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것 같은 모습에 나를 투영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다.


영원한 현역!’ 이를 위해서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배움을 계속하는 것이다. 새로운 일을 위한 자격증 공부도 좋고, 사회 공헌이나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배움이어도 좋다. 늘 배우는 자세를 가지면 미래에 대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려 교통섬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중에 바라보는 주위의 모습도 취업 전과 후는 다르다. 취업 후에는 고개를 들어 멀리 보고, 높이 본다. 움츠려진 어깨로 발끝만 바라보면서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게 된다. 


남들은 하찮게 보는 작은 일이라도 나에게는 매일 즐거움을 주는 작은 질서의 시작이다. 이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면서 또 다음을 준비한다. 지금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머무르지 않기 위하여 배우는 과정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일터의 색다른 즐거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