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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Jul 15. 2023

부부끼리 주말 장보기

마트에 유독 초로의 부부들이 많았다.

주말이 다가오면 아내는 함께 할 ‘일거리’를 여럿 마련한다. 집안 대청소가 되기도 하고, 장보기가 되기도 하고, 가까운 곳의 둘레길이나 하천 길을 걷는 것이 되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서는 꽃구경이 되기도 하고, 단풍 고운 곳은 찾기도 한다. 오늘은 근처 마트에서 장보기다.


장마철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비가 쉬어가는 날이었다. 작은 활동이라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는데, 마트에 가자고 하여 바로 준비하고 나섰다. 마트까지 차를 운전하고, 마트에서는 카트를 운전하고, 장보기를 마치면 짐을 옮기는 것이 정해진 역할이다.(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하면서 절대로 토를 달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들어가는지 주말에는 우선순위를 아내에게 위임한 지 제법 되었다. 의견 충돌이 생길 일도 없고, 큰 소리가 날 일은 더더욱 없다. 이렇게 서로에게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사실은 내가 주장하여 앞세워야 할 일들이 점점 줄어들어 가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장마철이지만 도로의 차들은 여느 주말과 다름없이 많았다. 마트의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줄은 명절 무렵의 줄 서기가 연상될 정도로 길었다. 아차 하는 사이 꼬리를 잡지 못하고, 옆 차선으로 전진하여 끼어들기를 해야만 했다. 본의 아닌 새치기가 되어 괜한 눈치가 보였다.


평소 그런 것에 익숙하지 못하여 식은땀을 흘리면서 끼어들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다행히 한 분이 양보를 해 주었다. 미안하면서, 무척 고마웠다. 움직이는 차량 행렬에서 비상등을 깜박여 감사를 표시하는 방법밖에 없었지만, 이 친절은 반드시 누구에게 돌려주어야겠다.


마트 안의 농수산물은 언제나 풍성하였다. 계절을 앞선 것도 많고, 해외에서 온 상품들도 많아서 보는 눈이 즐겁고 마음까지 늘 풍성해진다. 마트에서 늘 궁금한 것이 있다. ‘저 많은 상품들은 언제 모두 팔려 나가고 새 제품으로 교체되는가? 도대체 다 팔리기는 하는 것인가?’하는 것이다. 


마트 안에서 물건을 고르고 카트에 담는 것은 아내의 역할이고, 나는 단지 카트를 밀면서 열심히 따라다니는 역할만 하면 된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먼저 사자는 의견은 되도록 삼간다. 같이 장보기를 하면서 생긴 노하우다.


사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아내가 묻더라도 가급적 없다고 답한다. 그 질문이 정말로 나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 까지 시간에 제법 걸렸다. 장보기 마지막 무렵에 묻는 것이 진심이다. 그래서 오늘은 ‘명동 연잎 호떡’을 먹을 수 있었다.


장보기를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부부와 비슷한 연배의 쌍들 많이 보였다. 유심히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더 많은 것 같다. 실제로 많은 것인지, 느낌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생활 모습도 많이 달라져 간다는 것을 느낀다. 어렸을 때 미국 영화에서 보던 장면이 이제 우리의 생활 모습이 되어 있다.


마주치거나 지나치면서 카트 안의 내용물을 살짝 보기도 한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면서,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역할분담도 거의 같아 보여서 재미있다. 누군가 초로의 부부들이 장 보는 모습들을 지켜본다면 거의 비슷하다고 느낄 것 같다.


장 보러 가면서 세탁물을 찾기로 하였는데 둘 다 잊어버렸다. 여름철에 걸어가서 찾아오기에는 멀어서 차를 움직일 때 같이 찾았어야 했는데, 시원한 차 안의 에어컨 바람에 날려버렸다. 다행히 급하지 않은 세탁물이기는 하지만 느긋해지는 증상이 여럿 보인다.


그런데 장을 본 물건들을 옮기는 것은 예전처럼 쉽지 않다. 이 정도는 거뜬했는데 이제는 아닌가 보다. 겨우 5층까지 오르는데 등에서 땀이 흐르고, 숨이 제법 가빠진다. 세월을 상기하고 싶지 않아, 애써 여름의 더위와 장마철의 습도를 탓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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