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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Jul 08. 2023

눈으로 즐기는 북한산 자락

창밖으로 구름 배경의 능선을 바라보며

젊은 시절, 산에 자주 오르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의 산은 정상에 오르기 위한 대상이었을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 여러 유명한 산의 정상에 서 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것뿐, 사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빛바랜 사진들은 사진첩 어딘가에 있겠지만 지금은 자주 들춰보지도 않는다.


그때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산에 올랐을까? 지금처럼 SNS가 발달하여 자랑삼아 올리기 위한 목적도 아니었다. 흔히 정상에 한 번 오르고서 그 산을 정복했다고 말하는 치기 어린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좀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회한이 일기도 한다.


산을 오르면서 접한 말 중에서 마음에 남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산을 오르는 초보자는 힘든 곳에서 쉬고전문가는 경치가 좋은 곳에서 쉰다.”라는 말이다. 산을 제대로 알고 계획하여 오르는 전문가는 경치 좋은 곳에서 산이 주는 여러 가지를 즐길 수 있다. 


초보자는 항상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지는 지점에서 어쩔 수 없이 쉰다. 경치를 즐길 여유는 없다. 그저 잠시 체력이 회복되면 다시 오르겠다는 생각뿐이다. 왜 산에 오르고 있을까?


나는 산에 오르면서 몇 번이나 경치 좋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즐기는 산행을 했을까?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알만하니 이제는 즐기는 산행을 할 수 있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산을 즐기는 방법을 바꾸어야만 한다.


두 번째 들은 말은 등산(登山)과 입산(入山)”이라는 말이다. 진정한 산악인은 산의 정상에 올랐다고 하여 ‘정복했다!’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산악인이 정상에 올라서하는 행동으로 정상 석에 머리를 대고, 오르는 것을 허락해 준 것에 감사를 표하는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정적인 동작임에도 놀라움으로 다가왔고, 그 모습을 보면서 어릴 적의 치기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잠시 장마가 쉬고 있는 휴일, 창밖으로 보이는 북한산 자락은 구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온전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봉우리 몇 개는 구름 속에 있기도 하고, 산 전체가 연무로 인하여 뿌옇게 보이기도 하였는데 오늘은 온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마운 일이다.


멀리서 보니 산 전체가 보인다. 막상 산을 오를 때는 산이 보이지 않는데 이렇게 앉아서 경치를 구경하다니, 그것도 국립공원의 한 자락이다. 지대가 높은 곳에 사는 것은 오르내릴 때 힘든 것도 있지만 때로는 이런 즐거움을 안겨준다.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느껴본다.


언제 어떤 연유로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봉우리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다. 보현봉, 문수봉, 비봉, 향로봉, 족두리봉 등등. 약간 낮은 형제봉도 있다. 그 오른쪽으로는 인왕산까지 이어진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산들이 여기서는 이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산을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산은 그저 보기만 하는 즐거움도 크구나.’하는 것이다. 체력이 부족하여 오르지 못하는 한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도시에서 가까이에 국립공원을 두고 보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이 허락한 큰 혜택이다. 혼자 즐기는 것이 살짝 미안해지면서 감사의 마음이 더 커진다.

저 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모여서 이룬 하천을 따라 잠시 걸었다. 운동이 될 것이라고 위안을 삼으며 걸으니 무더운 날씨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물 위를 노니는 오리들, 물속을 오가는 잉어의 무리들, 그리고 그 옆을 부지런히 오가는 사람들. 참 다채로운 모습들이다.


산을 즐기는 것은 반드시 올라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천 길을 걸으며 멀리 보이는 산에게 물줄기를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구름이 강한 햇살은 막아주니 걸으면서 즐기기에도 좋다.


휴대폰의 카메라 성능이 좋아져서 이제는 간편하게 한 장소에서 다른 사진들을 얻을 수 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모습이 카메라에는 담긴다. 마음으로만 느껴도 좋지만, 몇 장을 남겨두는 것도 즐거움의 실체를 남긴다는 쪽으로 생각하니 잔잔한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글을 쓰는 동안 어두워지면서 산의 형상이 흐릿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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