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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Sep 30. 2023

추석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

30대 아들과 60대 아버지의 야구 캐치볼

추석 명절이고, 연로한 어른들이 고향에 계시고, 연휴가 6일이나 된다. 고향에 가야 할 이유는 많고, 열차는 이미 예매가 끝나서 어렵지만, 도로사정이 많이 좋아져서 자가용을 이용하면 어렵더라도 다녀올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연휴도 서울에 머물러 있기로 하였다.


핑곗거리는 많다. 우선 환갑이 지나고 나니, 명절에 대한 감흥이 떨어지고 장거리 운전하는 것이 선뜻 내키지도 않는다. 남쪽 끝까지 가서 얼굴 보는 것이 전부인데, 어머니는 손님 같은 아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셔야 하고 아내도 이제는 며느리 역할을 다하기에는 체력이  달린다. 후유증만 남을 것이 뻔한 명절의 장거리 여행을 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긴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근무와 바로 이어지는 일과 준비로 인하여 부대를 떠나지 못하는 작은 아들도 핑곗거리의 하나이다. 멀지도 않은 곳에 있는데 집에 오고 싶은 마음이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대신 찾아가서 얼굴을 보기로 했는데 날짜도 연휴 후반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어른들께 용돈 보내드리고, 전화로 안부를 교환하고 나니 연휴가 한가하게 다가온다. 여유를 부리며 읽으려고 마음먹은 책을 보면서 지내기에는 주전부리까지 있어서 안성맞춤인 평화로운 추석날 오후에 큰아들이 야구연습을 하자고 한다. 이게 얼마만인가.


큰아들은 특별하게 잘하는 운동은 없는데 여러 가지를 섭렵하고 있다. 대학시절에는 테니스를 잠시 배운다고 하다가, 국궁부 동아리 활동에 열심이었다. 졸업하고 입사 후에는 회사 내의 야구 동아리에 가입하여 사회인 야구부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언제까지 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주 열심이다. 책장에 유명한 야구감독을 하신 분의 책들이 꽂혀있고, 글러브도 10여 개, 배트도 다섯 개가 넘는다. 프로선수들이 사용하는 장비들도 직접 구경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참가하는 팀도 많아져도 이제는 세 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살짝 물어보니 개인 성적이 썩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주말을 이렇게 야구에 보내고, 주중에도 야구 강습을 받는 날이 있을 정도이다. 아내는 이런 활동 때문에 정작 여자 친구를 사귀거나 결혼 준비를 못한다고 마땅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활동도 젊어 한때려니 여겨서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햇빛 좋은 추석날 오후, 혼자서 무료했는지 야구연습을 가자고 한다. 야구는 아들들이 초등학생일 때 테니스 공으로 몇 차례하고 나서 처음이다. 아들과의 활동 자체가 최근에는 10여 년 전에 테니스 연습을 한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모처럼의 제의에 자신이 없었지만 따라나섰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어서인지, 함께 해 준 것이 고마워서인지 아끼던 글러브까지 선 듯 내밀면서 앞장서는 아들이 소파에서 뒹굴던 모습과는 다르게 보였다. 마침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이 개방되어 있었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자유롭게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30대의 아들과 60대의 아버지가 캐치볼을 하는 상황이 구성되었다. 아들은 연습 덕분인지 제법 잘하였지만(내 기준에서), 나는 기분만큼 몸이 잘 따라주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금씩 운동을 하였던 탓에 크게 힘들지는 않았고, 보조를 맞추어 주는 수준은 되었다.


집안에 있을 때도 마땅한 화제가 없어서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데, 운동장에 나오니 서로 바라보며 웃는 횟수가 늘어났다. 서로의 일상이 달라지니 공통의 화젯거리도 그만큼 줄어든 것 것인가. 운동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무리하지 않고, 받고 던지고만 계속하였는데도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어깨가 약간 뻐근하기는 하여도 명절을 통하여 아들과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진 듯해서 다행스럽다. 찾지 않아서 인지하지 못할 뿐 아직은 같이 할 것들이 많이 있다. 아들 입장에서 생각해 주고 다가가려는 노력을 좀 더 해야겠다. 내일 작은아들을 만나면 이번 추석은 가족 간의 화제와 추억이 더 늘어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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