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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Jan 07. 2024

나이 들어 책을 읽는 즐거움

같은 내용도 읽을 때마다 새롭다.

요즘 재미있는 책 제목들이 눈에 띈다. ‘사십에 읽는 삼국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오십에 읽는 논어’ 등이다. 그 나이에 읽으면 내용이 달라지는 것일까? 지금까지 몰랐다면 적어도 이 나이에는 이런 책들을 읽어야만 한다는 것일까. 각 저자의 의도를 다 알지는 못한다.


이제 예순을 넘겼으니 이런 종류의 책을 읽기에는 너무 늦은 것인가? ‘나무를 심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20년 전이었고그다음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다.’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너무 늦은 것은 없다. 특히 독서에 너무 늦은 때란 있을 수 없다. 지금 읽어도 충분히 내용을 알 수 있고, 가끔은 ‘저자와 대화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적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합격이나 불합격 같은 스트레스와는 먼 상태에서 하는 공부는 재미있다. 독서를 통하여 큰 것을 얻거나 더 나은 지위로 올라간다는 희망이나 약속은 없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새로운 지식은 항상 배움의 속도를 앞서지만, 그래도 세상을 등지지 않고 같이 가려고 노력하는 나에게 격려와 칭찬을 한다. 독서는 스스로에게 주는 큰 위안이다.


우연한 계기로 일기를 쓰고, 시간을 정하여 독서를 하는 습관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2년을 넘어서고 있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외관상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지만, 내면은 좀 더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미래가 막연하지 않고, 현재의 노력에 따라 달리질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고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책장에는 읽을 책들이 많다. 어떤 책은 은퇴한 후에, 그야말로 할 수 있는 일이 독서밖에 없을 때를 위해 미리 사둔 책도 있다. 생각을 바꾸었다. 독서를 위하여 은퇴를 기다릴 필요가 있는가. 그래서 새로운 발간된 책과 모아둔 책을 번갈아 가면서 읽는다. 세월이 지나도 지식은 낡지 않는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아쉽더라도 한 번으로 만족하고 덮어 둔 책도 있고, 그냥 덮기가 아쉬워서 나름대로 내용을 요약하고 적용할 것을 정리해 본 책도 있다. 저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는 책도 있다. 저자는 저 글을 쓰기 위하여, 발간된 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하여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을 텐데 나는 너무 쉽게 읽고 덮어버린다는 미안함이다. 


어떤 분은 강의에서 책을 읽고 나면, ‘새롭게 알게 된 것앞으로 적용해 볼 것비판적으로 꼬아 볼 것’으로 분류한다고 했다. 수 만원의 비용과 수 시간의 독서를 통하여 수 십 년이 될 수도 있는 노하우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노력이라 생각된다.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에서 제시한 방법보다는 훨씬 간결하고 적용하기 쉬울 것 같다.


책을 읽고 느낀 것을 생각으로만 정리하면 금방 잊어버린다. 그래서 글로 남겨야 한다. 아직은 글로 남기는 것이 서툴다. 하지만 완전한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늦추는 것은 영원히 쓰지 않겠다는 말과 동일하다. 지금 이렇게 작게 쓰는 것이 나중에 모아지면 제법 형태를 갖춘 글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쓰고 정리하는 것이 글쓰기의 출발점이다.




요즘 자기 계발에 관련된 책과 강의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소위 말하는 ‘시크릿’이나 ‘끌어당김의 법칙’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많아지는 것 같다. 부(富)를 이루기 위해, 근거가 박약한 외국의 이론을 무분별하게 적용하라고 하면서, 결국은 비싼 강의나 책을 파는 것으로 유도하여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이다. 공감이 가기도 한다.


비판받는 자기 계발 강의와 책에서 배울 것은 있다. 마지막에 꼭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책을 읽고, 나에게 적용할 것을 찾고 정했다 하더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려는 습관을 가지는 것은 새겨들을 만한 것이다.


무작정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독서이다. 그냥 양만 늘리는 읽기로는 어렵지만 사고(思考)가 더해진 독서는 사물을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지혜를 준다. 그래서 오늘도 책을 접하면서, 진리는 멀리 어려운 말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가까운 곳, 평범한 말속에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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