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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Feb 04. 2024

1년간의 독서모임을 끝내며

어울리면서 성장한다.

지인 6명이 뜻을 함께 하여 만든 독서모임을 마무리하였다. 작은 모임이었다. 인원도 많지 않았고, 모임도 2달에 한 번씩이었다. 그래서 독서모임과 직접 연관하여 읽은 책도 6권에 불과하다. 그래도 배운 것은 결코 6권에 끝나지 않는다.


순번을 정하여 한 사람이 읽을 책을 추천하고, 추천한 사람은 발제를 하고 다른 사람들은 책을 읽고 난 소감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하였다. 모임을 주관하신 교수님께서 부지런히 소식을 전하고, 진도를 정하면서 채근하였지만 모두의 마음이나 독서에 대한 습관이 동일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의견은 서로 다른 6개가 되고, 서로 배우면서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끝내는 것이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서로에 대하여 좀 더 알게 된 시간이었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배우는 시간이었다. 환갑이 넘어서 시작한 독서모임, 기대보다 성과는 많았다. 덕분에 책을 읽는 습관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비슷한 모임을 하고 싶고, 어쩌면 모임을 이끌어 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도 내 보게 된다.


다음은 마지막 책에 대한 발표문이다. 제목은 '택리지(이중환 저)'였다.




택리지(擇里志)에 대한 소고(小考)


이중환은 24세 때 과거(증광병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37세에 정변에 휘말려 국문당한 후 귀양을 가게 되었다. 38세에 유배에서 풀려나 66세에 죽을 때까지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전국의 현장 답사를 토대로 편찬한 인문 지리서택리지는 61세 때(1751년) 출간되었으므로, 23년간의 전국 여행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분은 왜 이 책을 썼을까? 언제부터 ‘사대부들의 살 터를 찾기 위하여’라는 목표를 세우고 전국을 여행하게 되었을까? 여행의 결과물이 책으로 탄생한 것인가, 책을 쓰기 위하여 전국을 돌아다닌 것인가? 

‘이 글을 넓게 보는 사람은 문자 밖에서 참뜻을 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하면서, ‘나의 이 글도 살 만한 곳을 고르려고 해도 살 만한 곳이 없음을 탄식한 것이다.’로 결론은 내지 못하고 독자들에게 떠넘기듯이 출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이 많다.


이중환은 벼슬에서 물러난 후 죽을 때까지 벼슬길에 다시 오르지 못했지만, 조선시대에 귀양에서 복권된 사례가 적지 않았으므로, 본인도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결과적으로 끝내 벼슬에 복귀하지 못했다. 그 한(恨)을 저작으로 남긴 것이라고 우선 믿고 싶다.


책을 읽고 나서 정리하는 방법으로 첫째 새롭게 알거나 깨달은 것을 적고, 둘째 적용할 것을 적으며, 마지막으로는 비틀어 볼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한다. 

이 책에 대해서는 마지막 방법이 끌린다. 그분의 서술이 현재의 사실과 다르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고, 너무 사대부만의 입장에서 서술하였으며, 일부 지역의 평가가 너무 편협하다고 느껴진 것에 대한 반항이다.


좋은 땅을 찾아다닌 이유가 단지 ‘사대부가 살 터를 찾기’ 위해서였을까? 그 사대부(독자?)는 누구인가? 처음에는 단지 자신을 두고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

당대에 이루지 못한 입신양명의 꿈을 후손들이 이루어 주기를 바라면서, 오히려 죽어서 묻힐 명당을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이후 책을 쓴 것은 자기를 알리고 싶은 의도와 함께 이제는 꿈을 접고 여정을 정리하는 것은 아니었나 짐작해 본다.


요즈음 부동산에 관련한 책들이 많이 나온다. 그 출간 목적은 다양할 것이다. 노하우를 알리기 위한 순수한 의도도 있을 것이고, 책 판매 및 강의로 유도하여 수익을 내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이 책도 어떤 면에서 부동산에 관한 내용이지만, 200여 종의 이본이 나올 정도로 명성을 얻었더라도, 최소한 돈을 벌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사장(死藏)하기 너무 아까운 지식을 남기기 위한 것’으로 믿는다.


최근에 「지리의 힘」이라는 책을 보았다. 지구상의 각 대륙의 지리와 연계하여 현재의 국경선과 정치적, 민족적 분쟁의 원인 및 생활상까지 잘 분석하였다. 비슷한 종류의 책이 출간 연도를 기준으로 260여 년의 차이가 나는데, 시공간을 보는 스케일과 정보력의 차이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집념을 가지고 집필한 노고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감히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한 평가를 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하였는가?’이다. 글은 누군가가 읽는 것을 전제로 쓴 것이고, 그래서 항상 두렵고 가벼이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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