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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Jan 28. 2024

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가끔 내 있는 자리를 점검해 본다.

건물을 지을 때 건물주와 설계사는 주기적으로 현장에서 공사의 진척을 확인한다. 건물 설계를 위한 회의도 많이 하고, 설계도가 건물로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그래도 현장점검은 필요하다. 눈으로 보는 모습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다.


현장을 보면서 설계도와 비교하여 처음에 원하는 모습이 아닐 경우에는 설계가 되었든 시공방법이 되었든 수정이 필요하다. 공정의 진척에 따라 점검이 중요하다. 완성되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수정하려 하면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단순한 벽돌 조적공에게 건물 전체에 대한 중간점검은 불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맡은 부분에 대한 조적만 충실하면 된다고 여긴다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 그는 단순한 작업만 했을 뿐, 건물 전체의 건축에 기여하였다는 자부심은 느낄 수 없다. 


큰 안목으로 보면, 조적공의 작업에서도 건물전체에 미치는 영향요소를 찾을 수 있다. 자신을 단순 작업자라 생각하면 그냥 넘기면 된다. 그러나 경험이 많다면 지금 작업이 공정에 미치는 영향과 결과까지 예측하여 전체 공정에 반영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안목으로 작업을 한다면, 단순작업일지라도 건물을 짓는데 일조하였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고를 때 대부분 목차를 참고한다. 서문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추천사나 서평을 미리 보기도 하겠지만 결국 최종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책을 설명할 때도 항상 목차는 제시한다. 전체의 내용을 미리 판단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어디쯤을 읽고 있는지 모른 채 앞뒤의 맥락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책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처음 책을 고른 이유와 작자가 말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작은 부분에 치우쳐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다시 목차를 보면서 현재를 점검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책을 읽으며 작가에게 가장 미안할 때는 작가의 의도는 도외시한 채, 그저 기계적으로 책장을 넘길 때다. 작가는 작은 문구 하나, 문장 하나에도 신중하게 고르고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 것이다. 퇴고를 반복하면서 적절한지와 읽히기 쉬운지 등 많은 고심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같은 속도로 그저 읽고 있다면 미안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말하는 인생 2막에 이미 들어서 있다. 1막에서는 앞만 보고 가면 되었고, 주위를 살필 여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또는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인생 2막이 눈앞인데도 막연한 기대와 근거 없는 자신감의 때문일 수 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나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돌이켜 후회하고 있을 시간이 없고, 잘못된 길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디쯤 가고 있는가? 내가 정한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았는가? 자주 돌아보고, 확인하면서 가야 한다. 

이제는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 그래야 길을 잃는 일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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