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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Jan 21. 2024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본다'의 의미

나이 들면서 깨닫게 되는 삶의 양식 한 가지

1970년대부터 유명한 킴 카잘리의 ‘Love is (사랑이란)’에서 보았던 문구가 문득 떠오른다. “사랑이란 나란히 앉아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신문에 한 편씩 연재되는, 그림을 곁들인 글이 좋아서 조용히 머리를 끄덕이면서 음미하던 글귀가 많았었다. 

* 2017년에 양장본으로 다시 출판되었다고 한다.


왜 마주 앉아서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지 않고, ‘나란히 앉아서 같은 곳을 보는 것’이 사랑일까? 결혼 36년 차이지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물론 실천도 쑥스러워서 못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맞는 말이라는 생각은 더해진다.


우연히 읽은 책에서 그 해답을 조금 보았다. 허남철 님의 ‘인생 2막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읽을수록 킴 카잘리의 ‘Love is’에 나오는 문구들이 중첩되었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고 나서 가장 걱정하는 것 중의 하나가 부부관계라고 하는데, 이분이 보여주는 일상 모습은 해답으로 좋은 사례 그 자체인 듯하다. 부러우면서 닮고 싶은 모습이다.


허남철 님은 퇴직 후에 집에 세끼를 모두 먹는 소위 말하는 ‘삼식이’였지만, 부부간에 전혀 트러블이 없었다고 한다. 그분의 생활철학에서 이유가 짐작이 된다. ‘집안일을 하는 것은 아내를 돕는 것이 아니고, 같이 하는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퇴직 전에는 아내가 하루 종일 끝도 없는 집안일에 매달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퇴직 후에 집에 계속 같이 있으면서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을 위해서 그 긴 시간 동안, 이 많은 일을 해오고 있었구나 하고. 책에 적을 수 있을 정도로 집안일을 ‘같이’하고(돕는 것이 아니고) 있으니, 이렇게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분은 요리도 배웠다고 한다. 과연 그렇다. 부부가 요리를 같이 하려면 ‘나란히 서서 서로 조력해야 한다. 함께 먹을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나란히 서는 것이다. 책에서 킴 카잘리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멋있는 삶이다.


누군가 그분께 집안일을 어떻게 분담하느냐고 묻자, 분담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쓰레기 분리수거 등 보이는 대로, 누구랄 것 없이 그냥 하는 것이지 일부러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하지 않으면 아내가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부부가 자잘한 다툼으로 집안분위기를 싸늘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부부만의 산책도 자주 한다고 했다. 걷기 위해서는 나란히 가야 한다. 가다가 알맞은 쉴 곳을 발견하면 어차피 바쁠 것도 없으니 쉬어간다고 한다. 퇴직 후 낮 시간에 한가하게 햇볕이 따스한 벤치에 앉아 곧 꽃 피울 벚나무를 바라보며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는 광경이 그려진다.


나도 퇴직하면서 집안의 주도권을 진즉 내려놓았다. 아내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한다. 부딪친다 한들 어차피 이길 수도 없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같이 할 것과 서로의 영역이 알게 모르게 나누어지면서 큰 소리 나는 일 없고 웃는 일이 많아진다. 행복은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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