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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Feb 11. 2024

나흘 연휴를 보내면서

빨간 글씨의 날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주변을 본다고 하지만 결국은 지금의 내 위치에서 본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냥 흘려버리면 나중에 또 후회의 시선으로 반추하는 날을 맞게 될 것이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것을 실천한 성현들은 세월을 거슬러 존경받아 마땅한가 보다.


올해의 설 연휴는 나흘이다. 내일도 출근하지 않는다. 구직활동을 할 때는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것이 눈앞의 가장 큰 소망이었고, 취업 초기에는 정기적으로 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웃을 수 있었다. 지금은 다시 달력을 넘기면서 연휴를 보면 미소 짓게 되고, 별다를 바가 없을 텐데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게 된다.


연휴의 첫날은 아내와 설맞이 장보기를 하였다. 식구도 적은 데다 차례를 거창하게 지낼 것도 아니어서 소박한 장보기였다. 그저 연휴 간 시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것을 우려한 장보기라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떡국거리를 사고, 전 한 접시를 사는 것이 명절맞이의 전부라고 해야 할까.


아내도 나이 들어가면서 약해져, 이제는 집에서 모두 준비하는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물론 내가 도울 수는 있지만 극히 단편적이거나 힘쓰는 일에 한정된다. 그래서 작은 양을 사 먹으면서 명절의 의미만 느끼는 것으로 만족하는 명절이다.


명절아침에는 양가 집안에 전화로 세배드리는 것으로 설날 예의는 끝이다. 이나마도 얼마나 남았을지,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서글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연휴에 인파에 부대끼면서 먼 고향까지 다녀올 체력도 용기도 이제는 소진된 듯하다. 전화로나마 설맞이를 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기도 하다.


설날 오후에는 따스한 햇볕을 핑계로 집안에서 빈둥대는 큰아들과 근처 초등학교에서 야구놀이를 하였다. 다소 벅차기는 하였지만 모처럼 아들과 함께한 시간은 좋았다. 사회인 야구에 입문한 아들 덕분에 모처럼 야구공을 던지고 받으며 20여 년 전의 시간을 같이 회상해 보는 설날이 되었다.


오늘은 행동에 제약이 많은 작은아들을 찾아가서 점심을 함께 하였다. 아들 둘이 전부인데 장성하고 나니, 네 식구가 함께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것도 연간 몇 번에 불과하다. 그래도 짧은 시간이나마 같이하고 돌아오니 허전한 마음이 조금은 덜하다.


아들을 염려하여 명절에 오지 말라고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느낀다. 전화로 겨우 몇 마디 나누고 나서 끊을 때 얼마나 허전하실까. 봄이 되면 가서 뵙겠지만 지금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늘 염려해 주시고, 이 나이까지 감싸주시는 정에 감사드린다.


나흘의 연휴, 이제 마냥 즐거워할 나이는 아니지만 스스로 재미를 만들어가야겠다. 책 읽고 글 쓰는 시간 외에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을 좀 더 가져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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