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부부도#3. “명품백은 내가 못 사줘도..”

-극한 부부의 크리스마스 선물

by 정원석


아침부터 뭔 택배가 온다는 문자에, 네이버 푸시에 이메일에.. 정신 사납게 말이야.​


초인종이 울리고, 딸이 나가서 “이게 뭐야?” 하며 가지고 온다.​


훗..이제나 저제나 하던 애플워치가 도착하기로 했지.​

애들은 뭐냐며 뭐냐며 빨리 열어보라고 난리다.



“우와아아아아아!!!!” 아내와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나는 별 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한다.


​“어어 이거? 아빠가 엄마 ‘에르메스’ 하나 사줬어. 너넨 1미터 반경 접근 금지, 앞으로 엄마 손도 잡지 마. 때 타.”


​아내한텐 한 소리 들었다.


​“버킨백을 사준 것도 아니고, 싸게 먹혔네?”


​……


​이건 뭐 할 말이 없군. 애케플도 들어줬는데…


​어쨌거나 저쨌거나 개봉기는 덤. 가장 놀라웠던 건 저 문구였다. “타협하지 않는 장인정신” 그럴싸 한데, 그렇다면 보통 가죽 세공업자들은 무엇과 타협하고 있단 뜻일까… 조그마한 결점 하나도 두고 볼 수 없다 이런 의미인가. 뭐 하여간 내 눈으로 보기엔 별 결점은 없었으나 시계 줄을 채웠더니 가죽 줄의 구멍이 커졌다며 손을 벌벌 떨던 아내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가끔 주변에서 자랑인 듯 얘기하는 사람들을 본다.

“아 뭐 우리 와이프는 가끔 명품 백 하나 사주면 만사가 오케이야. 술집 가도 뭐라 안 해 ㅋㅋㅋㅋ 문제는 며칠 안 가 허허허허허허”

통념상 불편한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아니 뭐 어떻게 하면 백 하나에 만사가 오케이라는 거지? 만약 내가 아내한테 명품을 사주고, 나는 오늘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겠다고 하면 “이럴 속셈이었나? 집어치우고 방에 붙어 있어”라고 말할 것 같은데.

어렸을 때 친구 집에 가면 친구 어머니께서 뤼비텅은 장바구니로 쓰시던 기억 있다. 내가 이걸 아는 이유는 우리 엄마가 짝퉁도 A급이라며 애지중지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친구네는 장롱을 열어젖히면 색깔별로 버킨백이 3개쯤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남자들이 언제 신을지도 모르는 스니커즈를 쟁여두고 뿌듯해하는 것처럼 뭐 그런 비슷한 감정이려나. 액수 차이가 좀 심하다는 것은 논외로 할 지라도, ​난 사준 적이 전혀 없다.


내 아내가 명품을 안 좋아할 리는 없다.


​왜냐, 에르메스 워치를 받자마자 뭘 막 꼼지락거리더니 잠시 후 맞닥뜨린 이 풍경.


쓰던 일반 애플워치는 나뒹굴고 있었다. 이건 뭐 당근에 올리라는 말인가보다.

그렇구나. 곰 같다고 생각한 내 아내도 명품 좋아하는구나!

내가 하도 안 사주니 보다 못한 장모님께서 사주셨나보구나.


나에겐 뭘 사달라고 한 적도 없고 그래서 별생각 없는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아마도 그녀는 원기옥 모아서 터뜨리듯 한 방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화들짝 든다.

​한 번도 안 사줬으니 한 번 사줄 때 센 놈 고를지도 모른다.

실은 나도 그 언젠가를 위해 적금을 몇 년 전부터 넣어보고 있다. 준비된 남편의 본보기를 보여준다는 각오로 시작했다.


근데 문제는 꼭 1년 만기라는 거. 그리고 만기 시 입금 계좌가 내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거다.

“적금 잘 넣고 있지?^^”

뜨끔.. 이런 거 아내는 아직 모를 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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