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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웨이즈 정은미 May 23. 2024

산책과 달리기의 그 중간쯤

우울해서 했던 것



알람을 잘 맞춰두지 않는다. 

알람소리에 잠을 깨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 알람을 끄기 위해 핸드폰을 봐야 하는 것이 

이미 주체적이지 못한 인간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이 들어서인지 모르겠다.




4월의 어느 날이다.

결심하지 말자.

다그치지 말자.

몰아세우지 말자.


"그냥 마음이 가는 데로"의 컨셉으로 살고 있었던 어느 날

자연스레 눈이 떠져, 계획에 없던 산책길을 나섰다. 


바람막이 점퍼 속을 스며드는 

살짝 차가운 듯한 바람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도 녹아드는

그 온도의 바람은 매력이 넘쳐난다. 




천천히도 걷다가, 빨리도 걷다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완전한 운동복을 갖추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캣맘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꽃봉오리들


사진을 찍고 싶어 멈추기도 하고

봄바람에 어울리는 노래에 흥얼거려 보기도 하고






생각이 피어난다. 

대체로 그 생각들은 부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명상의 다른 형태가 아닐까 싶다.

생각이 더해져서 무거워지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함으로써 그 생각들이 지워지는 느낌이다. 


좋았다.

이날의 산책이.


보통의 나 같으면

내일은 몇 시에 일어나서 꼭 산책을 해야지 등의 결심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날은 이날이 좋았던 걸로 묻어두었다.


다음 날이다.

거의 비슷한 시간, 눈이 떠진다.

느그적 거리며 소금가글을 하고, 소파에 앉으니 이런 생각이 든다.

'또 나가볼까?'

어디선가 들려오는 몰아세움이 없이 자연스럽다.


그렇게 은근히 시작된 나의 산책은 

5월이 되면서 산책과 달리기의 사이의 어느 지점에 와 있다. 

스며드는 공기를 느긋하게 마시는 횡단보도까지의 길.

그 횡단보도를 건너면

쭉 이어진 인도길을 천천히 달리며 점차 만들어지는 땀방울이

고맙게도 나의 리듬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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