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기로 한, 커피숍에 도착할 때쯤 전화 한 통이 왔다.
“저기. 오시면 어떤 걸로 드실래요? 미리 시켜 놓겠습니다!”
“아 네. 그럼 카페라테 마실게요^^”
창밖에 보이는 그는, 책을 보고 있었고, 말끔하고 새로 산 듯한 겨울 니트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세상 좋은 웃음을 취하고 눈은 반짝거린다는 느낌이 났다.
미리 시킨 커피와 더불어 허니브레드가 놓여 있었다.
빵과 커피를 본 순간, 일단 기분이 좋아졌다.
연출이든 아니든, 책과 카디건, 그리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이 소개팅에 대한 성실함이 보였다.
사실 어제도, 소개팅을 하고 온 나였다.
31살의 나는 거의 매주 소개팅을 하고 지겹도록 까르보나라를 먹었다.
별 감흥 없이 나간 그 자리에서, 나는
‘아,, 이 남자와 결혼을 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직감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 남편 또한 그런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결혼 준비를 하게 되었다. 동시에 임신도 했다.
서울과 천안 사이의 중간 어딘가로 알아보던 집은 남편 직장이 있는 천안에서 자리 잡기로 다시 계획을 수정하고, 일을 그만두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새로 들어간 지 1년 6개월 정도 되는 새로운 직장에서 빠르게 진급이 되었다.
대리라는 타이틀에 계열 경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던 나는, 나름의 부담감을 안고 지내고 있던 터라, 직장인이면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
-쉬고 싶다-라는 생각을 막연히 하였다.
마침 임신과 결혼 아주 알맞은 핑곗거리였다.
한 시간 이상씩 출퇴근을 하며 임신한 몸으로 다닐 수 없다고 남편과 합의된 것 같이 말하고 다녔지만, 이건 100% 내가 결정한 상황이고, 남편은 그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천안이라는 새로운 도시에 정착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인프라가 형성되어 있으며, 초, 중, 고를 다 끼고 있는 곳의 한 아파트였다. 연식은 20년 된 복도식 아파트. 우리의 신혼은 그곳에서 시작했다.
소형 평수에, 주거지역으로 오래된 곳.
5년 뒤, 그렇게 아파트 가격이 내려갈 줄 상상도 못 했다.
비록, 80% 이상 대출을 받았음에도, 주택에서만 살아보다 아파트라는 곳에 대한 로망과 내 집이라는 기쁨.
만난 지 1년도 안 되어 결혼하여 서로를 알아가는 기쁨에 젖어 바퀴벌레가 가득한 식탁 없는 집에서 알콩달콩 신혼생활을 꾸려 나갔다.
다시 결혼 당시로 돌아가 본다면,
결혼식을 앞두기 한 달 전 즈음, 첫 유산을 했다.
배가 너무 아프고, 하혈까지 하여 가본 산부인과에서는 수술을 권유했다.
수술을 하고, 결혼 준비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하였다.
첫 유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또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
결혼 1년 후 또다시 유산을 하게 되었다.
임신을 핑계로 그만둔 회사.
그러나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지 못했고, 나는 직장이 없었다.
다시 몸을 만들어 다시 임신을 하고 다시 또 유산을 하기를 반복하며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인가?
낳지 않으면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자식의 부재에 대해 내가 견딜 만한 베짱이 있는가?
솔직한 심정으로, 그 당시의 나는 내 아이가 생기는 것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저 없으면 안될 거 같은 생각.
2번의 유산으로, 또다시 겪을 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뒤로 한 채, 다시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일수록, 어느 순간부터
남편 오기만을 바라는 아내가 되어 있었다.
직장이 없고, 마음 나눌 친구 한 명도 없는 그곳에서 점점 자신감은 상실되어 갔다.
그때의 나는 나를 이해하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당장 일을 하지 않는 불안감.
아이도 없는데 일하지 않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를 염려하며 남발하듯이 이것저것 무엇인가를 배우러 다니기도 하고, 하루 이틀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당을 받은 날은 조금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남의 시선을 나 자신의 마음보다 더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