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를 받으며, 워크넷과 잡코리아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하며 직장을 알아보았다.
타지방에서, 내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나는 좌절했다.
이렇게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없단 말이야?
결혼한 여성을 뽑지 않는다거나, 32살의 나이가 많다고 여기거나,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다닐 수가 없거나..
회사가 나를 내가 회사를 거부하는 이유들이 참 많았다.
그러다, 어렵게 한 군데를 찾았는데, 내 경력을 조금 인정받을 수도 있겠다는 곳에서 채용공고를 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가방을 만들어서 국내 쇼핑몰에 납품하는 회사였다. 천안에서 패션 쪽 회사는 처음 보았다! 기쁜 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입사를 하였다. 알고 보니, 가족 회사이고, 가족이 아닌 여직원 한 명이 그만두는 상황이었다.
자재관리/주문관리/고객관리를 할 사람을 뽑고 있었다.
받던 월급의 절반 수준이었으나,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설렘을 안고서, 저녁 알람 시계를 맞추고, 아침에 그 알람 시계가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새로운 직장에 출근을 하였다.
그런데, 회사의 위치가 밤이면 앞이 보이지 않는 논과 밭(?)이 있는 어딘 가에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칼같이 퇴근을 하고, 그만두는 여직원과 나는 인수인계를 받는 내내 야근을 하였다.
그리고 남편이 데리러 왔다.
그러던 4일째 되는 밤 10시 즈음 그날은 혼자 늦게까지 일을 하였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남편은 회사 업무로 오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택시 또한 없어서 큰 길가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가로등 하나 없이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시골길.. 너무 무서웠다.
중간중간 길을 잃고 공포에 질린 채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날 밤 퇴사를 결심했다.
회사와 내가 맞지 않는다면 퇴사를 할 수 있다.
가족 중 유일한 직원으로, 창고 재고 파악 업무(박스를 다 까서 입고와 출고된 걸 매일 파악했다)와
고객센터 업무와, 입사 첫날부터 야근을 해야만 회사.
지금 돌아가라고 해도 나는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또 한 번 나의 능력을 의심하고, 세상의 낙오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아직 실업급여를 받으니, 무언가를 배워볼까?
마음의 급급함이 점점 더 심해지고, 실업급여가 끝나기 전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직업상담사라는 자격증을 도전해 보기로.
실업급여를 받으러 가면 상담하시는 분들이 안내를 해주신다. 그분들이 바로 직업상담사분들이시다.
공무원처럼 쭈욱 일할 수 있으며, 계약직도 정직원이 될 수도 있고,
몇 년에 한 번씩 공무원 시험을 가점을 받고 볼 수도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1차는 무난하게 보았던 것 같다. 두 달 뒤 2차 시험에서 59점으로 떨어졌다.
시험을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안 했다.
공부를 하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1점 차이라니.
시험 일정이 바로 다시 있는 게 아니어서 또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2차는 논술식으로 백지에 써보는 연습을 거듭하여, 다시 본시험에서 다행히도 좋은 점수로 합격을 하였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막 상 일할 곳을 찾으니, 이 또한 쉽지 않았다.
일단 관련 업계 경력이 있는 사람을 뽑는다는 지원 요건들.
고용지원센터 혹은 대학교 취업지원실이 목표로 삼고 이 자격증을 땄다. 그런데, 자격증만으로 갈 곳이 없었다.
다시 또 내 마음을 다 잡았다.
일단 경력을 쌓아야 한다. 국가지원을 받아 학원을 운영하는 곳들에 가서 취업을 하자.
자격증을 따고, 그렇게 찾아 헤맨 시간이 약 6개월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 국비지원 미용학원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월급은 내가 5년 전에 받던 신입 연봉보다도 작았다.
그곳에서 1년 6개월 정도 근무를 하고, 35세 세 번째 임신 준비를 다시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