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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유니 Oct 26. 2020

인생 3대 미제곡

제발 이 노래 제목 좀 찾아주세요!

당신에게도 그런 노래가 있을까?

왜, 멜로디 한 소절 알고 있는데 제목을 모르는,

너무너무 찾고 싶은 그런 노래 말이다.

내게도 그런 곡들이 있었지만, '있었'지만!

어제부로 제목을 전부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짜릿한 전율이 식기 전에, 그 노래들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전유니 인생 3대 미제 곡

1 미안하다 사랑한다 사운드트랙 - 마지막 선택 - 2014년 검거

2 엠투엠 - 이름  2016년 검거

3 노원근 - 백야 (애니메이션 D.N.Angel 오프닝) -2020년 검거


1 미안하다 사랑한다 사운드트랙 - 마지막 선택

마지막 선택은 아찔한 바이올린 선율이 주를 이루는 사운드트랙이다.

지금도 들을 때마다 활이 아니라 칼로 바이올린을 키나, 생각한다. 

그 다이나믹함이 좋아서 제목 모르던 이 노래를 오랫동안 찾아다녔지만,

비극적이게도 2000년대 초반은 휴대폰을 스피커에 갖다 대면 자동으로 노래 제목을 찾아 주던 시기가 아니었다.

대신에 네이버 지식인이 있었지.

누군가 가사만 알고 있는 노래를 지식인에 질문하면, 사람들이 곡을 찾아 주었다.

그래서 나도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을 올렸다.

가사가 없는 사운드트랙이지만 그래도 음이라도 알고 있는 게 어딘가!

나는 인터넷 세상의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멜로디를 텍스트로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태양신이나 식물신이 내 질문을 봐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미도시라시미 라솔파솔 - 하는 노래 아세요?

하고 질문을 올렸지만


아무도 찾아 주지 않았다.

결국 이 노래의 제목은 고등학생 때 찾았다. 

제목을 찾고 침대에 엎드려 기분 좋게 음악을 듣던 건 기억나지만, 

어떻게 찾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기록하지 않으면 또 이렇게 날아가 버릴 것 같아서, 꼭 기억하고 싶어서.


2 엠투엠 - 이름



이 노랠 처음 들은 순간이 뚜렷하게 기억난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 태권도 도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수업이 끝나면 사범님이 봉고차를 타고 원생들을 집으로 데려다주시곤 했다.

집에 가던 어느 밤, 사범님의 차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온 거다.


— — — - — — — 이름-

( 원래 가사 :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이름)


사범님은 이 ‘이름’이라는 구절을 가성으로 맛깔나게 따라 부르셨고,

그 순간 이 멜로디가 내게 남아버린 거다.

애석하게도 다른 가사는 다 날아가 버리고 이름이라는 단어 딱 하나만 남긴 채로.

그런데 이걸 어떻게 찾나.

이 세상에 이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는 해수욕장의 모래만큼 많을 텐데.


생각날 때마다 이 노랠 찾으려고 시도했었다. 그리고 시도한 수만큼 실패했었고.

‘이름 노래’ ‘노래 이름’ ‘발라드 이름’ 이런 식으로 수없이 검색하다가

대학교 2학년 때, 마침내 찾는 데 성공했다.

앞의 기억나지 않는 가사를 음절 수에 맞춰 지어내어 검색하다가

네이버 지식인에서 찾은 거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노래 이름이 이름이었다.

진작 제목부터 찾아볼걸, 빙빙 돌아왔지 뭐야.

기억하고 있던 그 파트 -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이름 - 은

당시 엠투엠 앨범에 객원 보컬로 참여했던 김진호의 목소리였다!

좋아하는 가수인데 (어린 시절을 sg워너비와 함께했었다), 여기서 또 만나서 너무너무 반갑더라.




3 노원근 - 백야 (애니메이션 D.N.Angel 오프닝)



이 곡이 바로 마지막 미제 노래다. 세 곡 중에서 제일 궁금해한 지 오래된 노래!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가 유치원 때 TV에 애니메이션(그때는 만화영화라고 불렀다) 채널이 꽤 있었는데, 그걸 보다가 이 곡을 들었다.

다른 희망찬 오프닝과 다르게 음울한 멜로디가 마음에 들었었다.

가사도 모르고, 애니메이션 제목도 모르고,

기억나는 건 멜로디 한 소절과, 영상에 등장했던 천사랑 악마가 하늘을 날던 이미지뿐이다. 분위기가 꽤 다크했던 것도 같고.

애니메이션 오프닝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검색 범위를 상당히 좁힐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찾기가 힘들더라.

곡을 찾고 싶어서 ‘천사 악마 애니메이션’ ‘악마 애니메이션’  뭐 이런 식으로 열심히 검색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젯밤에, 90년대생 추억의 애니메이션 오프닝곡을 정리해 놓은 온라인 페이지를 찾은 거다!

거기에 오프닝이 300개정도 있었는데,

왠지 촉이 왔다. 이 중에 내가 찾는 그 노래가 있을 것 같다는 촉이.

그래서 그 페이지의 영상을 일일이 재생하고






내가 찾던 그 노래를 찾았다!

영상을 틀자마자 내가 아는 그 소절이 바로 흘러나오더라!

애니메이션 제목은 D.N.angel 이었다.

진짜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보는 제목이다.

제목에 천사가 들어가는 건 얼추 맞췄네.

성숙한 작화의 캐릭터가 나오는

다크한 영상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캐릭터는 별로 성숙하지 않고, 분위기도 그렇게 어둡지 않더라.

이제는 내가 더 어른이고, 내가 더 다크해서 그럴지도 모르겠군.

이 곡을 찾은 건 진짜 어제 하루 최고의 아웃풋이다.

적어도 15년에서 길게는 18년 동안 이 곡을 기억하고

좋아하고 있었단 말이다!


노래는 시절을 저장한다. 삶의 어떤 순간들은 그냥 곡 하나로 설명이 되곤 한다.

그래서 노래를 사랑한다.

누워 눈감고 노래를 들으며 나는

수학여행 가던 버스로, 이어폰을 나눠 끼던 야자 시간으로, 어느 3월 자취방 화장실 샤워기 아래로,

여덟 시간 어둠을 날던 밤 비행기로, 동생과 만화 영화를 보던 소파 위로 되돌아간다.

어려서 제목을 궁금해하던 노래를 찾은 건, 곡이 아니라 그 시절을 되찾은 거다. 


자 그렇습니다. 이걸로 인생 3대 미제 곡 건은 종결입니다.

들으면 반가울 노래들이 몇 곡 더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건 전의식 속에 있고요, 찾고 싶어 헤매던 곡들은 이제 다 검거했다 이겁니다!

이제는 3대 미제 곡을 모두 담은 든든한 재생목록을 품은 채로 작업을 하러 갈 거다.

그러니까 이 글은 여기서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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