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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유니 May 31. 2021

쓰레기장에서 발견한 노을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내가 사는 오피스텔의 분리수거장은 지하 2층, 주차장 옆에 있는데

낮에 가면 정리를 도와주시는 미화원분을 뵐 수 있다.

그분은 슬레이트를 쳐서 분리한 한 평 남짓한 도구 보관 공간에 계시다가

늘 반가운 인사로 맞이해 주셔.


어느 날 밤 열 시쯤 가니까 그분이 안 계시더라고?

대신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이 눈에 들어왔어. 그 공간과 시멘트벽에 사진들이 붙어 있지 뭐야.

가을 단풍과 돌담, 여름 하늘과 노을, 그것들이 그렇게나 아름답더라.


일상과 삶을 대하는 그분의 애정이 느껴지더라 - 고는 내가 감히 이야기할 수 없겠지만,

전시장에서 작품을 볼 때의 감동을 그곳에서도 느꼈다고는 말할 수 있겠어.



벽에 붙어 있는 사진들과 꽃


각자 조금씩 상황이 다르겠지만 사는 게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사랑하려는  몸짓과

매 순간에 충실하려는 모습

그럴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미숙한 모습들이 아름다워 보여.

그냥 이제는 그런 사람들이 좋더라.


벽에 붙은 사진과 꽃 그림들이 뭐라고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어.

그 사진이 아름다워서, 그리고 일상을 사랑하시는 그분의 모습이 괜히 부러워서!


이전에는 그런 일도 있었다.

동묘에서 산 티지 체크셔츠가 한 장 있었는데,

맨 아랫단추만 엉뚱한 색 실로 꿰맨 흔적이 있더라고.

아마도 누군가가 아껴 입던 옷이었나 봐.

별것 아닌 부분에 뿌려져 있는 애정들을 발견할 때에,

그걸 발견하고 괜히 감상에 젖을 때에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실감해.


맨 아랫단추만 다른 색 실로 꿰매어져 있다. 누군가 아껴입었던 옷이구나 너!


다음에 분리수거하다가 그분을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드린 뒤

사진이 참 멋지다는 말을 꼭 전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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