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은 랜덤이었잖아요. 대신 죽음은 선택할 수 있거든요!
나는 태어남에 대해 그 어떤 선택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대, 시각, 장소, 가족과 성별 그 어느 것도 고를 수 없었죠.
그때 내가 무얼 할 수 있었겠어요?
나는 내가 태어난 줄도 몰랐단 말입니다!
탄생의 순간은 잊었으나
아마도 첫 숨을 들이쉬었을 거예요.
그건 희극이자 비극의 시작이었고, 나는 리허설도 없이 무대에 서야만 했습니다.
그 뒤로는 멈출 수 없는 공연이 시작되었죠.
때로 나는 아무도 지켜봐 주지 않는 무대 위에서 춤을 추어야 했어요.
때로는 발이 아팠지만 다른 연기자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꾹 참아야 했지요.
그리고 때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양으로 넘어지기도 했어요.
그렇게 극은 계속 진행되었지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몸에 힘이 빠질 즈음 공연이 끝나감을 느낍니다.
익숙한 관객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남은 이들의 얼굴에도 전에 없던 주름이 늘었군요!
나는 무대에서 내려왔어요.
시작은 마음대로가 아니었으니 끝은 내가 골랐으면 해요.
무릎까지 오는 풀들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들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멀리 새들이 둥지 튼 바위산이 보여도 좋겠어요.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이른 아침이었으면 좋겠군요.
나는 아침에 태어났으니 그때 떠나고 싶어요.
적란운 사이로 내리는 햇빛을 들으며
들판을 쓰다듬는 바람 소리를 보다가
내가 온 곳으로 조용히 돌아가고 싶어요.
다시, 유기물에서 무기물로.
그러니까 나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본질과 더 가까워지는 거지요.
긴 이야기를 품은 채, 언젠가 다시 살은 이의 호흡이 되기를
기다릴 거예요.
어차피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면
살아가는 동안 더 많이 주며 지내도 좋겠습니다.
가진 것은 사라지지만
주는 기쁨은 사라지지 않으니.
이건 내 버킷 리스트 공책 마지막 장의 이야기입니다.
탄생보다 죽음이 더 낭만적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어남에 대해선 어떤 의지도 표출할 수가 없지만,
운이 좋다면 마지막 장면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싶은 거예요.
2021년 3월, 버킷리스트 노트에 이 내용을 추가했어요.
저의 마지막 버킷리스트는 자연 속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떠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나의 조상들이 살던 바다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원하는 곳에서 태어날 확률은 0이지만,
이 버킷리스트를 이룰 확률은 0이 아니겠지요.
0.000001과 0은 아주 다르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