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유니 Apr 27. 2020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에겐 백신이라며.

그리고 사람이 지구에게 바이러스라며?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에게 백신이라는 비유를 종종 듣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구에겐 바이러스라는 거지, 하다가도

맑아진 하늘과 발광 플랑크톤이 빛나는 해안가를 보면

그 말에 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코로나로 인적이 끊기면서 멕시코 아카풀코 해안에 발광플랑크톤이 돌아왔다.  출처 안토니오 에스퀸카 트위터.


현대인을 독립된 개체라고 정의하지만 과연 내가 자연 속에서 진정 독립된 개체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긴 수렵의 역사를 지나 정착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문명이 발달하던 순간부터  인간은 군체가 아니었을까요. 개미처럼요.

수많은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살아갑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당신 없이 살 수 없고 당신도 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당신의 면면도 모르는 채로 살게 되더라도요.


나약한 나는 혼자 농사를 지어 먹고 살 수 없고, 입고 있는 옷을 스스로 지을 수 없고, 들어앉아 있는

보금자리를 혼자 지어올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언젠가 내 식사를 위한  벼를 대신 키우고 닭을 대신 잡았습니다.

 합성 섬유를 뽑아냈고, 내가 앉은 책상을 만들기 위한 나무를 대신 베었습니다.

나는 손 하나 까딱 않고 책상에 앉아 할 일을 했지만,

어쨌든 내 삶을 위해 닭은 죽었고 석유는 시추되었고 나무는 쓰러졌습니다.


벌목꾼 한 사람에게 서식지 파괴의 책임을 다 물을 수 없습니다.

나도 공범이니까요. 그에게 나무를 베어 달라고 부탁했으니까요!

그에게 전화도 문자도 이메일도 팩스도 카카오톡도 다이렉트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지만

나의 삶이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내가 그 누구에게도 아마존을 개발해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해도

아마존 개발에 나의 영향이 깃털만큼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분홍 돌고래들의, 전기 뱀장어들의, 카이만들의 보금자리를 야금야금 갉아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방에서 할 일을 하며 나는 살아갑니다. 내 친구의 서식지를 갉아 먹으면서.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순간엔 자연의 비명을 모른 척 하면서!


지금 이 순간 나는, 시멘트로 지어 올린 회색 둥지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다듬습니다.

옆에 놓인 잔에 담긴 홍차 티백은 가장 좋아하는 향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안락합니다. 너무도 안락합니다.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죄스러운 이 순간을 메모로 남깁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