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 로그

차가운 다정함 [2]

by 비새


<적당히 다정함이 주는 뜻밖의 거리>


구인 광고 속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말은 내게 '도망치시오'라는 경고등처럼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해야 할 '가족'이라는 단어가 근로계약서 앞에서는 가장 섬뜩한 착취의 예고장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선을 넘는 질문을 할 권리와, 대가 없는 희생을 요구할 권리를 획득하려 든다.

나는 직장에서 개인사는 굳이 꺼내지 않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직장생활을 해 오면서 사람을 대하는데 선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남에게 묻지도 않고, 내 얘기도 먼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가족 같은 호기심은 멈추지 않는다.

커피 한잔을 마시다가도 훅, 선을 넘고 들어온다.

"그런데, 남편분은 뭐 하세요?" 가슴이 턱 막힌다. 나는 이혼을 했다. 죄지은 것도 아니니 숨길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굳이 직장에서 "저 이혼녀입니다."라고 광고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표정으로 가면을 쓰고 이렇게 말한다.

"아, 저 이혼했어요. 요즘 이혼한 게 흠은 아니잖아요. 워낙 흔한 세상이고..."

옛날처럼 손가락질받는 시대도 아니니 당당하게 말한다.

하지만 가족 같은 오지랖은 기어이 2차 가해를 시작한다.

"아, 그렇군요. 그럼 애인은 있으세요? 요즘 다들 연애하잖아요. 외로울 때 술 한잔 할 수 있는 남자친구 있으면 덜 외롭고 좋을 것 같은데요." 위로인지 염장인지 모를 말이 쏟아진다.

내 외로움을 왜 본인들이 걱정하며, 내 술친구 유무가 업무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끓어오르는 짜증을 꾹 누르며, 짐짓 지쳐버린 투로 대화를 자른다.

"아뇨, 워낙 먹고사는 게 바빠서요. 그리고 이젠 남자는 지긋지긋하네요."

그제야 그들은 입을 다문다. 나는 일하러 왔지, 내 사생활을 안주 삼아 씹으라고 온 게 아닌데. 글들의 질문은 '관심'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있지만, 뜯어보면 '무례' 그 자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감정적인 선을 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진짜 아이러니는 돈 앞에서 발생한다.

이미지 © AI 생성 (비새의 콘셉트 기반)


프리랜서인 나는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정규직이 아니라, 일한 만큼 벌고 내 능력에 따라 수입이 널뛰는 그런 직업이다.

그래서 나에겐 생존을 위한 수입 커트라인이 있다. 가장으로서 나와 내 아이를 건사해야 하기에, 수입이 그 기준 밑으로 떨어지면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다.

다만 기준이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즉시 떠나는 것은 아니다.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구조라면 일정기간은 더 버틴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을 두고도 회복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미련 없이 정리하고 나온다.

이건 나만의 잣대가 아니라, 생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면 누구든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같은 회사를 지향했던 곳일수록 유독 마무리가 매끄럽지 않을 때가 많다.

프리랜서에게는 생존 본능에 따른 이동이, 가족을 강조했던 그들에게는 마음의 빚을 저버리는 배신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참 씁쓸하며, 가족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내 사생활에 관심을 보일 때는 영락없는 식구였는데, 막상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그 가족의 울타리는 온데간데없다.

내 생계가 걸린 문제 앞에서 그들은 가족으로서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내가 살길을 찾아 떠나는 건 배신이란다.

책임을 져주지 않으면서 희생은 가족처럼 강요하는 것. 이것이 내가 가족 같은 분위기를 믿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다정한 단어에 너무 쉽게 속는다. 하지만 직장은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라, 계약서를 나눈 남들이 모인 곳이다.

이 '남' 들이 서로를 가장 존중하는 방법은 다정한 관심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두기'에 있다.

내 이혼 사실을 묻지 않는 '존중의 거리'가 나를 편하게 하고, 생계를 위해 떠나는 자리에 배신이라 부르지 않는 '담백한 거리'가 서로에게 합리적인 거리로 만들어 준다.

그러니 부디, 우리 서로에게 적당히 건조한 거리를 유지하는 건 어떨까. 너무 가까워서 기대하고, 기대해서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직장에서의 나는 가족이 되고 싶지 않다. 그저 예의 바르고 적당히 '완벽한 타인'으로 남고 싶다.

그것이 내가 직장에서 바라는 유일하고도 '차가운 다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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