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아카이브

착각의 심리[1]

by 비새


착각은 생각보다 쉽게, 우리의 머릿속에 스며든다.

상대가 나를 향해 한 발 다가온 것도 아닌데,
나는 이미 마음속에서 수십 걸음을 걸어가 버린다.
아마도 INFJ인 나에게는 그런 상상이 더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착각을 느꼈던 건 신입 시절이었다.

교육 담당자였던 그는 유독 나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내가 하는 일을 유심히 지켜봤고, 도움이 필요할 땐 홍길동처럼 어디선가 나타났다.
어떤 날은 내가 마시던 라테를 물어보더니,
다음 날 똑같은 커피를 사다 주었다.

사무실에 간식이 있는 날엔 내가 좋아하던 걸 기억해 뒀다가
“빨리 서랍에 넣으세요.” 하며 한가득 내게 건네주곤 했다.
그러다 웃으며 늘 이렇게 말했다.
“잘 드시네. 제 것까지 드세요.”
본인은 먹지도 않으면서, 그 말 뒤에 어색한 웃음을 덧붙였다.
주고 싶은데 그냥 주면 쑥스러우니까,
장난처럼 돌려 말하는 느낌이었다.

근무 중에도 자주 내 주변을 오가며 장난을 치고, 지나가듯 말을 툭툭 건네곤 했다.
솔직히, 이 정도면 헷갈릴 만하지 않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호감보다 ‘확인’을 원했던 게 아닐까.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향할 때마다
그 시선이 어떤 의미인지보다 ‘내가 괜찮은 사람인가’를 먼저 떠올렸던 것 같다.

착각은 그렇게 자란다.
상대의 말 한마디, 작은 호의 하나가 마음에 닿는 순간, 이유도 없이 설렘이 자라기 시작한다.

INFJ인 나는 관계 속에서 언제나 ‘의미’를 찾으려 했다.
단순한 호의에도 이유를 부여하고,
그 이유를 감정으로 바꾸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착각은 타인에게서 시작되지만,
결국 그 불씨를 키우는 건 내 마음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보이는 대로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착각의 심리 아닐까.

어쩌면, 착각은 누군가를 향한 감정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미 있고 싶었던 내 마음의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알아차렸다면, 괜찮다.
마음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는 증거니까.


착각은 그 사람을 향한 시선이 아니라, 나를 향한 마음의 반사였다.
— 비새, 감정의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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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뒤에 남은 마음의 흔적과, 그 속에 숨어 있는 심리를 글로 엮습니다. 감성과 통찰이 머무는 곳 <비새> <<흐노니>> 2026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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