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 Killed Imagination
나는 라디오를 좋아한다.
라디오와 TV의 가장 큰 차이는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TV는 보고 있으면 다 알 수 있다.
주인공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으며,
주변의 환경이 어떤지,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있는지 등을.
그러나 라디오는 다르다.
라디오는 상상력을 동원해야 이미지가 그려진다.
'DJ는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사연 속 그 사람은 그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등등.
그래서 나는 내가 가보지 못한 세상을 가게 해 주고,
내가 보지 못한 풍경을 그려주는 라디오를 좋아한다.
나와 라디오의 인연은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시작했으니 어느덧 20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학생이었던 내가 어른이 되는 동안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지역에 관계없이 서울 방송을 들을 수 있고,
외국에 있더라도 녹음파일이나 홈페이지의 '다시 듣기'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라디오를 본방으로 들을 수 있게 됐다.
듣는 환경과 제작하는 시스템이 많이 달라진 지금,
나는 20년 전의 라디오를 추억해 본다.
당시 내가 즐겨 듣던 주파수는
91.9 MHz, MBC FM4U였다.
휴일이나 방학 때는 '김기덕의 골든디스크'부터 시작해서
정오의 희망곡, 두시의 데이트, 오후의 발견,
그리고 배철수의 음악캠프까지 쭉 들었다.
물론, 학교 다닐 때는 하교 후 오후의 발견이나 음악캠프만 들었지만.
그때 MBC는 프로그램별로 일주일에 한 번,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했던 걸로 기억한다.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홈페이지를 통해
라디오 방송을 '보여' 줬다.
나는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를 하거나, 게임을 했었기에
'보이는 라디오'를 자주 이용하지 않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다시 지금의 라디오를 떠올려보자.
요즘 방송국들 상당수는 라디오 방송임에도
유튜브를 통해서 보여준다.
실시간으로 같이 방송이 되고
'다시 듣기'도 아닌 '다시 보기' 기능도 있다.
심지어 몇몇 라디오에서는 게스트들이 춤을 춘다.
라디오 방송에서 춤을 춘다라...
미국의 MTV가 개국하고 나서 마이클 잭슨, 마돈나 같은
비디오형 가수들이 전성기를 맞이했다.
(물론, 마이클 잭슨은 화려한 춤이 없었어도 성공했을 것이다)
'Video Killed radio star'라고 했지만
라디오의 순기능 자체를 위협하지는 않았다.
허나, 2025년 대한민국의 라디오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상상력을 키워주던 라디오는 TV와 다를 바 없어졌다.
'Video killed imagination'이 되어버렸다.
방송사 측에서는 할 말이 있겠지.
'요즘 추세가 그렇다', '광고를 붙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 등등.
충분이 이해한다. 그리고 지금의 라디오가 나쁘다는 의도 또한 아니다.
다만 아쉬울 뿐이다.
정말 순수했던 라디오 방송이 그립다.
시사 프로그램을 들으며 DJ와 게스트들이
얼마나 심각한 표정으로 방송하고 있을지 궁금해했던,
웃느라 다음 멘트를 놓친 진행자와 그걸 바라보며
당황하는 작가와 PD의 표정은 어떨지 상상했던
그때 그 라디오 방송말이다.
보이는 라디오를 더 선호하는 건 개인의 취향이고
방송사 입장에선 당연히 이윤이 남는 걸 택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권한다.
라디오만큼은 눈이 아닌 그냥 귀로 즐기시라고.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에게도 자신 있게 추천드린다.
여러분이 자신만의 보이는 라디오를 만듦으로써
방송사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세상이 여러분에게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