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었다.
고등학생 때 이 책을 읽으려다가
지루해서 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이 책을 집을 때마다
아주 잘 읽히고 있다.
그 이유는 단연 2013년에 나온
동명의 영화 덕분일 것이다.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열혈팬인 나는 그 영화를 여러 번 봤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마다
그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개츠비뿐만 아니라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데이지와
마초맨의 상징 뷰캐넌,
소설 속 화자이자 좋게 말하면
카스텔라같이 부드러운 남자,
안 좋게 말하면 유약하고 특색 없어 보이는
닉 캐러웨이까지,
책을 읽고 있음에도 얼굴이 보인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1920년대 뉴욕의 풍경 또한
시각화되어 내 머릿속에 펼쳐진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니 그야말로 술술 읽힌다.
소설이 영화로 구현된다는 건 모험이다.
영화화한다는 건 일단 그 소설 자체가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두터운 팬층이 형성되어 있을 텐데,
만약 영화가 그 기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다른 영화들보다 곱절의 비난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되었을 때
원작의 팬들이 "원작을 심각하게 모독했다"라고
맹비난 한 사건이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
실리는 것만 봐도 소설이나 만화를 영화화한다는 게
참 힘든 일이란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소설 읽기가 어려운,
입문자들에게는 영상만큼 좋은 게 없다고 본다.
'위대한 개츠비'와 비슷한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면 바로
'해리포터 시리즈'를 들 수 있겠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해리포터는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광고 문구가
'초등학생들을 책벌레로 만든 책'이란 카피였는데
나도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친구에게 빌려서 읽어봤다.
원래 내가 SF,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유치한 마법사이야기에
왜 전 세계는 이렇게 흥분하는 것이며
이게 뭐라고 영화로 까지 제작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1편 마법사의 돌 절반도 읽지 않은 채 친구에게 돌려줬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가 자랑스레 아빠가 사줬다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DVD를 틀어줬다.
사실 그것도 보기 싫었는데
다른 친구들이 다 보고 싶다고 해서 본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너무 재밌는 거 아닌가.
소설 초반에 나오는 맥고나걸 교수는
영국 런던 주택가 쓰레기 더미에 앉아있는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굉장히 기품 있는 고양이였으며
미국 영화에 나오는 좀 좋은 사립학교 수준인 줄 알았던
호그와트의 인테리어는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디자인으로 구현됐다.
주말에 바로 극장에서 하던 '비밀의 방'을 보고 왔다.
그리고 다시 책을 집었다.
마법사의 돌과 비밀의 방 두 권을
눈 깜짝할 새 읽었다.
읽으면서 계속 내 머릿속에선
영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아 이 대목이 그 장면이구나',
'이 대목은 영화에서 뺐구나' 하면서
둘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자연스레 시리즈를
전부 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쭉쭉 책을 읽어나갔고 당시에 출간된
가장 마지막인 불의잔까지 순식간에 읽었다.
한번 탄력을 받으니
아직 영화로 나오지 않은 4편까지 다 읽은 것이다.
물론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란 건 알고 있다.
원작 팬들이 어떤 마음으로 영화화를 반대하고,
혹은 비판하는지 잘 안다.
그렇지만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길잡이가 없다.
지금은 책을 즐겨 읽지만 한때 지겹도록
누나에게 '책 좀 읽어라' 소리를 들었던 나는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 왜 싫어하는지 잘 안다.
그들은 글이 지루해서 싫은 것이다.
지루하다는 건 쉽사리 상상이 안된다,
즉 그려지지 않는다는 뜻이며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려진 무언가를
먼저보고 글을 읽는 게 글과
친해지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영상을 먼저 보고 글을 읽으면
서서히 상상하는 훈련이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어떤 글을 읽어도
자신만의 영상으로 만들 수 있다.
나는 이렇게 글과 책과 친해져 왔다.
여러분들 주변에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이 방법을 추천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