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또 다른 삶이 시작된다

by 레지널드

출근과 퇴근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뭘까?

가장 큰 차이는 목적지와 목적이

다르다는 점 아닐까 한다.


출근은 같은 직장으로,

같은 장소에 모여 대동소이한 일을 한다.

각자 맡은 직책에 따라 당연히 업무가 다르지만

궁극적인 지향점은 내가 속한 회사와

나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렇게 각자 맡은 바 열심히 일을 하고

퇴근시간이 되어 회사 문밖을 나서면,

그때는 사람들마다 가는 곳도,

가서 뭘 하는지도 제각각일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집으로 향할 것이다.

집에 가서도 가족구성형태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린아이가 있는 엄마나 아빠는

퇴근 후 제2의 일과이자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주는 육아에 뛰어들 것이다.


나도 퇴근 후 어린 조카를 만나러 몇 번

가 봐서 아는데 흔히들 표현하는

'또 다른 출근'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란 걸 잘 안다.

심지어 나는 아주 잠깐 놀아주는 것도 힘들었다.

car-9942887_1920.jpg 출처: 픽사 베이

아이가 없는 부부, 혹은 혼자 살거나

기타의 형태로 사는 사람들도

집에 가서 마냥 놀 수는 없을 것이다.


청소, 빨래, 저녁식사를 집에서 한다면

요리와 설거지까지 자질구레한

집안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하루 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다음 날 매우 높은 이자를 치러야 한다.


부지런한 누군가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운동을 하거나 자기 계발에 매진할 것이다.


헬스장, 테니스장, 수영장, 운동장 등등

저녁 8시 이후에 가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볼 때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에너지를 쏟고 와서는

또 에너지를 쏟으러,

자발적으로 나온 이들이 멋있어 보인다.

정말 독한 사람들은 집에 가면 나오기 귀찮을까 봐

아예 회사 근처에서 운동을 하고 귀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회사에서도

일을 잘하는 편에 속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운동 대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편이다.

내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이 또한 대단한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퇴근 후 좀비 그 자체였다.

열심히 일했다는 핑계로 집에 와서는

저녁 먹고 소파와 한 몸이 되어 TV를 봤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봤다면

요즘은 생각하면서 본다는 차이가 있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감정을 내가 느껴보며

적어보기도 하고 나의 감상포인트를 적는다.

그리고 그걸 블로그에 옮기는,

글 쓰는 연습도 병행해서 한다.

책도 최소한 30분 이상은 읽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주로 이 모든 걸 집에서 하는 편인데

저녁시간대 도서관에 가보면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들 또한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꼭 땀을 흘리는 무언가를 해야 대단한 게 아니라

이런 정적인 활동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삶도 훌륭하다.

심신 단련을 당연하게 여기고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 여기까지만 읽고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나는 '퇴근 후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 게 아니다.


그냥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 주제를 정한 것이다.


저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다.

과거 내가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좀비가 되었을 때도 나는 행복했다.

생산적인 활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그런 일련의 행위들이 큰 행복이었으며

그래도 '1인분'은 하고 산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나는 퇴근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데..'라고

절대로 자책하지 마시길.

퇴근하고 치킨에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는 삶도,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면서

상사와 직장 욕하며 스트레스 푸는 것도 나쁘지 않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본인만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거지 뭐.

subway-4807266_1920.jpg 출처: 픽사 베이

우리는 평균적으로 18시 즈음 퇴근하고

편도기준 40분가량(서울 직장인 평균)을

이동해 집에 간다.

저녁 먹고 뭐 하면 20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잠들 때까지

짧으면 2시간에서 길면 4시간 이상이 남는다.

그 시간은 온전히 한낮에 에너지를 쏟아낸

나 자신과 그렇게 일해야 하는 이유이자

원동력인 가족을 위해 썼으면 한다.


방식이야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다.

짧지만 가치 있는 그 시간을 즐기러 가야 하는 퇴근길,

사람들 모두 낮에 받은 스트레스는

직장에 남겨두고 웃는 모습으로 퇴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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