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세상을 움직여주는 연료
여러 차례 썼지만 나는 먹는 걸 좋아한다.
음식을 좋아하고 먹는 행위자체를 즐긴다.
그렇지만 야식은 즐기지 않는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저녁 9시 이후로는 뭘 먹지를 않는다.
가끔씩 퇴근을 늦게 하는 날이 종종 있지만
그때도 마찬가지다.
저녁 늦게 먹으면 정말 몸에
큰 죄를 저지르는 기분이 들어서다.
살이 찌는 건 당연한 것이고
잘 때도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내 위장기관에 미안하다.
저마다 몸의 특성은 다르겠지만
사람에겐 평균치라는 것이 있다.
위장기관도 평생동안 할 수 있는
일의 양이라는 게 한정돼 있고
마구잡이로 쓰다가는 언젠가 분명 탈이 난다.
"난 야식을 그렇게 먹어도 살이 안 찌는데?"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일단 부럽다는 말씀드리고 싶다.
과거의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살 안 쪄도
무조건 끊으라고 말했었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 여러분들은
내가 무척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신체 건강하고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시겠지만 아쉽게도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며
프링글스는 광고 문구 그대로
한번 열면 끝을 봐야 멈추며,
믹스커피를 좋아한다.
그래서
'양심이 있다면 야식은 먹지 말아야지'하며
참는다. 참다 보니까 그래도
평생 야식 안 먹으며 잘 살아왔다.
고맙게도 이건 우리 가족들의 영향도 있다.
우리 가족들은 밤늦게 뭘 먹지 않는다.
배고프면 차라리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군대 있을 때는 예외였다.
참 희한한 게 군대 가기 전까지도
야식을 안 먹었고 제대하고 나서도 안 먹었는데
딱 그 기간만 무지 먹었다.
가장 많이 먹었던 건 라면이었다.
엄청 추운 겨울날,
불침번 근무를 마치고
함께 근무를 섰던 사람과 마주 앉아
먹는 라면은 먹어본 사람만 아는 맛이다.
전역 후 군대동기들과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추억을 되새겨보고자
새벽에, 밖에서 라면을 먹은 적이 있는데
도무지 그 맛이 나질 않았다.
라면 다음으로 많이 먹은 건 냉동만두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금방이고,
당직 간부가 허락해 주면 큰 냄비에다
봉지째로 넣어서 끓여 먹기도 했다.
물론 만두만 단독으로 먹은 적은 없고
항상 라면과 함께 했었다.
군생활 1년 9개월간 먹었던 냉동만두의 양과
그 후 5년간 먹은 만두의 양이 아마 비슷할 것이다.
군생활할 때 친했던 간부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분들이 당직을 설 때는 가끔씩 배달도 시켜 먹었다.
지금은 음식배달해서 먹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하던데
내가 군생활하던 시절만 해도
그건 아주 진귀한 경험이었다.
재밌는 건 족발이랑 보쌈 먹는 사람은
늘 그것만 시키고,
치킨 먹는 사람은 늘 그것만 시킨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야식에 대한 즐거운 추억이 참 많았던 사람이다.
결혼 전, 혼자 사는 친구집에 모여서
다 같이 밤새 노는 날이 종종 있었는데
그때는 참 신세계를 본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는 야식의 종류라고는
족발/보쌈, 치킨, 피자가 전부였는데
그건 정말 옛날이야기였다.
그렇게 많은 가게들이
그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리라곤 생각도 못했고
종류 또한 이렇게나 다양한 줄 몰랐다.
해물찜, 햄버거, 중국음식,
심지어 샐러드가게도 새벽 2시에
'배달 가능' 상태였다.
그만큼 야식인구가 많다는 뜻이겠구나 싶었고
이 시간에도 음식을 먹는 게
신기하다 싶던 그때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여기 시키자. 나 공부할 때 여기 자주 시켜 먹었던 곳이야"
그렇다, 나는 편견에 갇혔던 사람이란 걸
그때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야식 먹는 사람은
저녁까지 다 챙겨 먹고 밤늦게 까지 놀다가
출출해져서 시켜 먹고,
먹자마자 바로 자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먹는 끼니이자
피로를 달래주는 간식이었고,
시간의 흐름을 가속화시켜 주는
부스터 같은 것이었고
일하는 재미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내가 잠자는 동안 세상을 굴려가는
사람들을 잊고 있었다.
그 후론 야식을 즐긴다는 사람에게
무조건 먹지 말란 말은 하지 않는다.
야식을 먹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지도 않는다.
다만 그래도 야식을 먹더라도
건강한 야식을 먹으란 말은 한다.
맵고 짠 음식보다는 최대한 담백한 음식을 추천드린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야식에 대한 욕구가 확 생겼다.
주말을 이용해서 나도 한번 시켜 먹어봐야겠다.
대신에 저녁을 6시에 먹고
다음날 아침은 먹지 않아야지.
먹고 싶은 게 있다기보단,
그냥 야심한 시간에 배달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먹는 건 어쨌거나 신성한 행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