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 든, 타의 든 알게 되더라
명절을 맞이하여 가족들과 다 함께 만난 자리,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에서 헤어지고
나와 아내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갈 생각이었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다 그렇게 이야기했고
떠나려는 순간, 아직은 아기인 조카가
내 이름을 부르며 차에 타라고 울기 시작했다.
몇 번을 고민한끝에 차에 올라탔고
엄마 집까지 함께 이동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누나가 조카에게
'삼촌은 이제 할머니 집에서 내릴 거야'라는 말을 했다.
이윽고 도달한 엄마 집,
아까와는 달리 조카는 울며 떼쓰지 않고
나에게 웃으며 '잘 가'라고 했다.
집에 오는 길, 아내는 애한테 아무 설명 없이
그냥 간다고 하니까 애가 놀라고,
서운했던 것 같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다.
누나가 차에서 충분한 설명을 하니까
그때는 울지 않았다.
아기라서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오판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한번 떠올려봤다.
어른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 가면
별의별 이야기들을 다 듣게 된다.
자랑부터 시작해서 본인들의 옛날이야기,
민감한 사생활과 최근의 일상 등등..
어린 나이지만 말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억양,
심지어는 듣는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서도
사람들의 감정을 조금은 읽을 수 있었다.
'에이 설마' 하는 생각이 드신다면
여러분들의 어릴 적을 한번 떠올려보시길.
여러분들도 분명 그런 경험이 있으실 것이다.
특출 난 천재나 영재가 아니어도 그런 경험은 꼭 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사람들이 다
그렇게 떠들다가 갑자기 나를 보며
"야 애 있는데 말 조심하자", "애가 뭘 알겠어"
이런 대화가 나온다.
이미 다 이야기해놓고
그제야 눈치를 보는 것도 웃기지만
애들이라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도 웃긴다.
알건 다 안다.
애들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가리지 않고 하면
안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특히나 아이들은 모든 걸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시기이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뇌도,
타인의 말투와 표정과 감정을 받아들이는 가슴도
한창 성장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형성된 가치관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건 당연지사다.
말 조심해야 하는 건 어른끼리도 서로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어른과 아이들의 차이가 있다면
어른들은 걸러 듣는 능력이 있고
이미 여러 산전수전을 겪었기에
조그마한 상처는 금방 이겨낼 치유력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부모의 표정 변화에 민감하며
주변 어른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예민하다.
상처받는 말을 듣는다면
자칫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토록
그 순간이 따라다닐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경제적, 신체적 보호자이자 정서적 기둥이다.
부모가 아이 앞에서 험한 말을 하거나
험한 표정을 지으면 아이는
자신의 울타리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낄 것이며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늘 불안해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험한 표정이 아닌 웃으며 하는 비속어도
결코 해서는 안된다.
아니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
어른들은 웃으면서 비속어를 주고받기도 한다.
아이들은 웃으며 대화하는 어른들을 보며
'저 정도는 해도 되는구나'라고 판단하여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어른들이 썼던 그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시청가능 연령을
등급으로 나눈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아울러 지나치게 돈 이야기를 하는 것도 해롭다.
돈의 소중함과 가치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가르치는 것과
집안의 재력을 아이에게 과시하듯
가르치는 문제는 다르다.
돈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것 해주는 건
말 그대로 좋은 것이지만 자신들이
부를 자랑하는 도구로 아이를 이용해선 안된다.
반대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자꾸 돈 없다, 어렵다는 이야기를
애들 앞에서 하면 애들은 자연스레 위축된다.
자존감은 돈의 유무와는 무관 한 것이다.
돈 없다고 아이의 자존감도 낮게 만들면 안 될 일이다.
누군가의 험담을 하는 것 또한 조심해야 한다.
애들에게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며
나아가서는 아무 뜻 없이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애들은 다 안다.
굳이 이야기 안 해도 우리 집 분위기가 어떤지,
엄마와 아빠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등등..
그러니 애들이 모를 거라 생각하고
무분별하게 말하고 행동하면 안 된다.
약속 또한 신중히 해야 하며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
아이들에게 잘하라 할 필요 없이 어른들만 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