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 개론의 홍보문구를 보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말이 나온다.
영화 내용과 견주어보면 참 적절한 문구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남자주인공은 자신의 첫사랑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아왔지만
정작 그 여자의 첫사랑 또한
자신이었다는 것은 몰랐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평생토록 간직한 첫사랑의 주인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 세상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척박한 세상에서 누군가는 나를 가끔씩,
혹은 자주 떠올리면서 잘 지내는지
궁금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일 아닌가.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다가도
가끔 우리는 소위말하는 꼴불견들을 마주한다.
꽤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기분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배설하는 말 따위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하는데
때로는 그런 게 잘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그 사람이, 그 상황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고 어쩔 때는
화를 내거나 속으로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
조금 유치하기도 하지만
'내가 죽을 때까지 저 인간 상종하나 봐라'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알까?
아마 어떤 사람이 자신을 평생토록 싫어한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래서 선인들은 그런 부질없는
행동 따위는 하지 말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했나 보다.
나도 용서와 사랑, 포용력이 주는 강한 힘을 믿는다.
그리고 언제인가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보고
약간의 섬뜩함과 동시에 생각을 바꾼 적이 있는데
그 글의 내용인즉슨
"많은 사람들이 여태껏 살아있는 이유는
단지 그놈들을 쏴 죽이는 게 불법이라서 그렇다"
그래, 누군가에게 나는 첫사랑,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기억의 사람일 수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에 나만해도 평생토록 기억해야 할
은인도 있지만 살면서 먹을
무수히 많은 끼니 중 단 한 끼도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영화 올드보이 속,
최민식의 대사가 생각났다.
사설감옥에 갇힌 걸 인지하고 나서
그는 노트에다가 살면서
자기가 상처를 줬던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그러자 화면은 새 노트가 금세
빼곡하게 적힌 장면을 보여준다.
더불어 그는 무난한 인생인 줄 알았는데
악행이 너무 많았다고 말한다.
나도 그 인터넷 글을 본 날,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살아오면서 했던 일들을 쫙 돌이켜 보니
나도 평범한 삶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내가 무심코 뱉은 말,
장난이랍시고 한 행동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아니 분명히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명, 한 명을 떠올릴 때마다
처음엔 변명거리가 생각이 났다.
'아이, 뭐... 그때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아 그때는 철없던, 허세 가득한 중2병이었으니까',
'아 그때는 장난이었는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정말 좋게 생각해도 어린 시절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게 어른이 되어서도,
군대를 갔다 와서도 그랬던 기억이 많은 걸 보니
내 잘못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변명거리를 먼저 떠올리기보다는
'아 그때 그 사람이 얼마나 내가 밉고 원망스러웠을까'
라는 생각부터 했어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부끄러움은 조금 잦아들고
다시 한번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나서 내가 미안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럼 상대의 반응은 둘 중 하나겠지.
"난 기억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어?"
라며 웃던가 또 다른 하나는
"아 너 알긴 아는구나"라는 시니컬한 반응이던지.
어느 쪽이든 나는 상관없다.
그저 내가 당신에게 줬던 상처가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걸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다음부터 나는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 미워하며 에너지 쏟을 바에
차라리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 생각한다.
아울러 나로 인해 이런 순간을 겪었을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과거를 반성함으로 지금의 나를 바로잡고
그걸 통해 미래의 나를 도와줘야지.
'나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지만
또 누군가에겐 나쁜 놈이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