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난 나에게 말을 건넨다
내가 유치원생이던 시절,
배우 故 김자옥 씨가 음반을 낸 적이 있다.
당시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잠깐씩 부르던 노래를 정식으로 발매했는데
제목이 '공주는 외로워'였다.
그리고 이 노래는 전국에 있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에게 널리 유행했고
그때부터 자아도취가 심한 여자를 두고 공주병,
남자는 왕자병이라고 불렀다.
그 단어는 아직까지 살아남아있으니
따지고 보면 이 노래가 준 영향력은 굉장히 셌다.
항상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외모를 감탄하는
공주병, 왕자병들은 따지고 보면 역사가 꽤 길다.
동화 백설공주를 보더라도 왕비가 끊임없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외모를 평가받지 않나.
한때 나는 거울을 보는 게 무척이나 싫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된 여드름은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괴롭혔다.
내 얼굴이지만 마주 보는 게 싫었다.
그러다 나에게 딱 맞는
화장품을 발견하고 나서부터는
거짓말처럼 여드름이 사라졌는데
그 후론 조금 달라졌다.
거울을 보면서 감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기분이 다운됐던
과거의 나 자신은 날려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거울 기피'를 끝내고
잘 지내다가 치아 교정을 하고 나서는
또 거울 보기가 싫어졌다.
미용상의 목적이 아닌
구강 건강의 목적으로 시작한 치아 교정,
그래서 교정기를 착용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그냥 살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모습이 보기 싫었다.
미용에 목적을 두었다면
나중에 좋아질 내 모습을 상상하며
버티기라도 할 텐데 그게 아니었어서 힘들었다.
그렇지만 교정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울을 늘 들고 다니며
고무줄을 끼우거나 식사 후
항상 확인을 해야 하기에
오히려 거울을 더 많이 봐야 했다.
반전은 교정이 끝나고 나서였다.
교정기를 뺀 내 치아가
이렇게나 가지런하고 이쁠 줄을 상상도 못 했다.
교정기간 동안 잘 먹지도 못해서
살도 빠졌고 치아배열도 좋아지니
얼굴이 너무나도 보기 좋았다.
공교롭게도 교정이 끝날 시기즈음,
코로나로 인한 각종 조치들이 해제되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됐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정말 많이 웃으며 다녔다.
내 좋은 모습을 막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그때부터는 거울을 자주 본다.
그전까지 거울을 보는 이유가
얼굴이나 머리에 뭐가 묻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면 요새는 내 표정을 확인한다.
일하다가 지칠 때 습관적으로
내 책상에 있는 거울을 본다.
아니나 다를까 어두운 표정의 한 사내가 있다.
마치 앞으로도 힘든 일이 계속 생길 거라고
믿는 사람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얼른, 억지로라도 웃는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야 행복하다는
그 흔한 말을 떠올리며 억지로 웃는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웃으면
'이렇게 까지 최면을 걸면서 살아야 하나?'
하는 현타가 오면서 그 현타 때문에,
정확히는 나 스스로가 웃겨서 진심으로 웃게 된다.
내가 경험한 정말 놀라운 점은
웃는 걸 습관화하다 보니
웃지 않더라도 얼굴이 밝아 보인다는 점이다.
예전에 내 얼굴을 보면
평온한 상태임에도 좀 어두워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에게
칭찬 반, 디스 반으로 하는 이야기가
"막상 대화 나눠보니까 유쾌하시네요"였다.
그런데 혼자 있어도 웃고
남들 이야기 들을 때 기본적으로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걸 습관화하니까
인상이 확 펴진 느낌이 들었다.
아니 확실히 좋아졌다.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내가 그렇게 웃으며 다니니
사람들의 평도 좋아졌고
무엇보다 내 기분이 좋아졌다.
'거울 보며 웃기'의 긍정적인 힘을
실감한 나는 이제 거울 보는 게 두렵지 않다.
거울 속에는 이제 뭘 해도
잘 될 거라고 확신하는 사내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들이 거울을 바라보며
"할 수 있어" 하면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이
나도 아침마다 샤워를 하며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낼 것이고,
저녁에 집에 와서 씻으며
이 거울을 다시 볼 때도 아마
나는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아내는 나에게 여자인 자신보다
거울을 더 많이 보냐고 가끔씩 놀릴 때가 있지만
난 그래도 수시로 거울을 본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평생의 로맨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