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의 박수

by 레지널드

지난 주말, 한국과 일본의 WBC 예선전이 있었다.

지난 대회 우승팀 일본을 상대로

우리나라는 중반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일본이 역전에 성공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의 김혜성선수가 동점 투런 홈런을 날렸다.

이때 아주 보기 드문 모습이 사람들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한국벤치가 아닌 일본의 벤치에서,

그것도 팀의 주축선수인 오타니가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쳐주는 게 아닌가.


같은 소속팀 선수인 김혜성의 홈런을

축하해 주는 장면이었는데 이게 참으로 낯설었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오타니가 홈런을 쳤을 때 김혜성선수가

저런 행동을 했으면 김선수는

'국가 대항전에 임하는 자세가...',

'프로의식의 망각' 등등의 표현으로

언론에 도배가 됐을 것이다.

온라인상은 말할 것도 없다.


야구에 임하는 오타니의 자세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다.

그는 야구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팀의 승리를 위해 모든 걸 쏟아내는 선수다.

그런 그가 상대팀 선수의 동점 홈런을 보고도

박수를 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마음의 여유'에서 나왔다고 본다.


상대가 한국이고, 자칫 이 홈런으로

일본이 질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같은 팀 동료를 축하해주고 싶은 그 순수한 마음,

내 상태가 어떻든 간에 진심으로

상대를 축하해 줄 수 있는 그 마음의 여유말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우리 인간은 기본적으로 남을 질투하는 게 기본으로 깔려있다.

특히 나의 상황이 안 좋은 경우에는 그게 더 극대화된다.

그래서 남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하는 것이다.

오타니의 모습이 딱 그러하다.


아울러 저 마음의 여유는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일본)가 홈런을 허용했어도 우리는 결국 이길 것이다. 이길 수 있다'

라는 자신감이 있기에 마음이 여유로운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이후 한국타선을 철저하게 봉쇄했고

그 사이 타선에서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승리를 거뒀다.

이와 비슷한 사례도 이미 나는 들어봤다.

윤석민 선수가 현역에 있던 시절, 팀은 연패 중이었다.

상대팀은 당시 압도적 1위 팀이었던 SK.

그날 선발로 나와 경기를 했는데

SK선수들의 실책으로 기아는

오랜만에 리드하는 경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우연히 SK벤치를 바라봤는데

선수들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기아의 벤치는 이기고 있는 상황임에도

선수들의 표정이 긴장감으로 역력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막판에 어수선한 플레이가 나오면서

기아는 역전당했고 연패는 더 길어졌다고 한다.

그때 윤석민 선수는 SK 선수들에게서

'어차피 우리가 이길 것이다'라는 느낌을 받았고

기아 선수들에게는 '우리 오늘도 지려나'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감이 결여되면 마음의 여유는 없다.

자신감과 여유가 없으면 유리한 상황에서도

안 좋은 생각만 하게 되며,

반대로 그것을 갖추고 있다면

악조건 속에서도 최상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행동할 수 있다.


결국 마음의 여유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의 유무가 눈에 보이는 성패를 가른다.


살면서 그런 사람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언제, 어떤 상황이든, 무슨 소리를 듣든 간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철저하게 감추기 때문에 쉽사리 예측이 불가능하다.

감정을 숨기지 못해 일을 그르쳤던 경험이

몇 번 있던 나로서는 그런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웃는 사람들이다.

온라인상에서 유명한 말인

'힘들 때 울면 삼류, 참으면 이류, 웃는 자는 일류'라는

말은 정말 명언이다.


나를 한번 돌이켜봤다.

누군가가 성과를 만들어내면

그가 기울인 노력을 보지 않고

'쟤는 운이 좋네', '저 상황에서 저거 못하면 멍청한 거지'

같은 생각을 했다. 축하는커녕 깎아내리기만 했다.

아마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그러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마음의 여유가 없던 그 시절엔 짜증도,

화도 많이 냈었다.

반성한다.


이제는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때보단 마음의 여유가 더 생겼다고 본다.

그렇지만 아직 까지 오타니의 경지는 아니다.

나도 자신감을 쌓기 위해 실력을 더 길러야겠다.

그러면 마음의 여유는 자연히 따라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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